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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곁에서 배부른 개가 될 것인가? 굶어도 자유로운 개가 될 것인가?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신인 작가 김범이 두 번째 장편소설 ‘공부해서 너 가져(웅진지식하우스)’를 출간했다.

작가는 지난 2012년 현대사의 아픈 부분을 한 할머니의 소동극으로 그려낸 첫 장편소설 ‘할매가 돌아왔다’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판권을 모두 계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온갖 폭행에 시달리고 있는 여고생과 잘 훈련된 개와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개간지 아저씨’를 등장시켜 폭력과 무한경쟁에 노출된 학교의 실태를 꼬집는다.

작품의 주인공인 ‘김별’은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 영어만 잘하는 여고생이다. 공부만 잘하게 되면 해결될 일이 많은 것 같다. S대든 사진학과가 있는 다른 대학이든 원하는 대학 진학도 가능하고, 짝사랑하는 오빠와의 사랑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이혼 직전의 부모님도 화해할 것 같고, 선생님부터 친척까지 온갖 칭찬을 하며 사람대접을 해줄 것 같다. 


“궁금하겠지. 저게 혹시 도망은 치지 않을까? 선생을 찾아가거나 경찰을 부르진 않을까? 저 시선들은 내가 다리 밑에 도착할 때까지 집요하게 따라 붙을 것이다. 저들은 물론 노는 애들이 아니다. 노는 애들을 경멸하고 그 애들 하는 짓이 불쾌한 평범한 학생들이다. 하지만 저 시선들은 분명 노는 애들보다 더 잔인하게 날 감시하고 있다. 내가 오늘 말 그대로 아작 나길 바라며 행여 ‘끝장 보기’에 차질이 생길까 초조해하고 있다. 내게 세상은 바로 저 시선들이다.”(16~17쪽)

그런데 ‘개간지 아저씨’가 나타난 이후 학원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들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알고 보니 그는 과거 머리가 좋아지게 하는 ‘S침’을 놓았던 불법 침술사였다. 그러나 부작용이 더 많다는 걸 깨달은 그는 더 이상 ‘S침’을 놓지 않는다. 이제 그는 폭행과 경쟁에 찌든 아이들을 구하고, 개의 야성을 되살려 산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S침’만 맞으면 부작용이 있을 순 있지만 전교1등이건 고시 패스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곁에 있으면 개는 따뜻하고 배도 고프지 않은데, 자꾸 주인이 자유를 되찾아준답시고 야성을 되살려 산에 풀어주려고 한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과연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고민에 빠트리고,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는 작품 말미의 ‘저자의 말’을 통해 “세상의 모든 폭력이 너무 무섭고, 정말 싫고, 그래서 끝까지 그 폭력에 대해 떠들어 대고 싶었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김규항 월간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교육의 주제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아니라 ‘얼마짜리가 되는가’이고, 내 아이 교육문제의 강박증은 보수와 진보의 경계마저 허물었으며,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 된 지도 한참이지만 그런 모든 참상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감춰진다”며 “그 희한한 풍경은 교육문제와 아이들 문제야말로 우리 사회의 정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파헤치려다 논설이 돼버리거나 파헤친답시고 변죽만 울리기 십상인 그 정체를 짜릿하게 파헤친 작품”이라고 추천사를 남겼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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