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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기자의 만화 독후감2> 흑백이 다행인 좀비만화, ‘아이 앰 어 히어로’
[헤럴드경제= 김상수 기자]<만화를 좋아하시나요? 만화는 추억이자 꿈입니다. 만화만큼 남녀노소 사랑받는 콘텐츠가 또 있을까요? 슬램덩크를 보며 가슴이 뭉클했고, 둘리와 함께 꿈을 키웠죠. 코난의 비상한 머리에 감탄하고, 풀하우스의 알콩달콩 사랑얘기에 가슴이 찌릿했던 기억들. 돌이켜보면 만화는 우리에게 책과 영화에선 접할 수 없었던 소중한 추억, 지식, 감성을 선물했습니다. 좋은 작품을 공유하는 건 만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특권이자 즐거움입니다. 그 즐거움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주인공은 괴물 같은 망상에 시달리는 ‘찌질한’ 만화가이다. 밤만 되면 망상에 시달려 괴상한 춤과 노래로 무서움을 이겨내려하고, 사격총을 어깨에 맨 채 위안을 삼는, 그러면서도 ‘아이 앰 히어로’란 노래를 항상 중얼거리는 잉여인간이다. 그런데 어느날 여자친구가 현실 속에서 괴물로 변한다. 여자친구 뿐 아니다. 마치 생지옥에 빠진 듯 좀비가 곳곳에서 출몰하고, 경찰도 군대도 모두 불능의 상태로 빠진다. 주인공 스즈키 히데오에겐 사격총이 있다. 무정부 상태, 비비탄이나 화살 등으로 좀비와 맞서 싸우는 시대에 사격총은 그야말로 청동기 시대에 등장한 철기와 같은 위력. 이제 그는 사격총을 앞세워 생존에 나선다.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싫어한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접한 이 만화 역시 사회의 마이너한 존재의 인생철학을 다루는, ‘호문쿨루스’ 류의 만화를 기대했으나, 1권이 끝나는 시점부터 기대는 정확히 어긋났다.

19세 이상 관람가로 이 만화는 매 회 잔혹한 살상이 이어지는 좀비물이다. 연인, 친구, 심지어 혈육 간에도 살상이 불가피한, 말그대로 생지옥을 다룬 좀비물이다. 스토리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현재 12권까지 발간됐는데, 초반을 제외하곤 연이은 살상과 새로운 동료 추가 정도로 요약된다. 잔인한 장면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에선 몇몇 장면은 그냥 보지 않고 넘어가기도 했다. 


다만, 잔인함에 혀를 차면서도 끝까지 이 책을 보게 된 것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책의 강점이라 하겠다. 몇몇 신선한 발상이 보인다. 좀비가 되면 심장도 멈추고 신체 일부가 사라지는 건 좀비의 세계 보편적인 조건. 그런데 이 만화 속 좀비는 생식능력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좀비에게 생식능력이 왜 필요한걸까? 아직 이 해답이 나오질 않았다.

좀비가 되더라도 일말의 인간성을 남겨놓는다는 게 이 만화 좀비의 또 다른 특징. 영화 ‘웜바디스’ 정도는 아니지만, 엄마 좀비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보호하려 하고, 호감을 품었던 남성은 끝까지 물지 않는 여성 좀비도 등장한다.

좀비 중에서도 인간성을 보존한 좀비도 있다. 즉, 신체는 좀비이지만 정신은 여전히 인간인 셈. 흡혈귀처럼 생존을 위해 피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늑대인간처럼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필요도 없다. ‘좀비 히어로’인 셈.

또 하나, 이 만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주인공 때문. 예측할 수없는 주인공의 ‘잉여적’인 행동이 다음 회를 궁금하게 한다. 본인은 히어로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현실은 찌질함의 극를 달리는 주인공. 이미 좀비가 돼 버린 동료 히로미를 옮기면서도 팬티를 흘낏 쳐다보는 모습이나, 사격총을 가졌으니 여성들에게 인기 폭발일 것이란 말에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모습 등에서 주인공의 기존 관념을 모조리 깨뜨린다. 물론 점차 제목에 걸맞은 히어로로 변해가겠지만, 이 정도로 찌질한 주인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정신건강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법한 만화다. 물론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 개인 취향도 크게 반영됐다. 다만 그런 입장에서도도입부와 발상은 신선하며, 그 덕분에 한번 책을 잡으면 놓기 힘든 매력도 있다. 작가인 하나자와 켄고의 작품으로는 이 만화 외에도 ‘보이즈 온더 런’이 있다. 이 만화 역시 ‘아이 앰 히어로’처럼 아직 덜 성숙한 어른이 주인공. 이렇게 보면 작가의 독특한 주인공 철학이 더욱 눈길을 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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