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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세기 동서양을 뒤흔든 수상하고 황홀한 맛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음식의 역사에 있어서 18세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8세기는 근대의 씨앗이 싹트며 문화가 풍성하게 피어나기 시작한 시대다. 이때부터 음식은 ‘먹거리’의 차원을 넘어 ‘맛’의 차원으로 대중에게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8세기의 맛(문학동네)’은 18세기의 맛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흥미로운 단면을 맛깔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안대회, 이용철, 정병설, 정민, 주경철, 주영하, 소래섭 등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 중인 인문학자 23명이 쓴 글을 엮었다. ‘한국18세기학회’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의 18세기를 다채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이다.

어떤 맛에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한때 유럽에서 버터는 교황청의 면죄부가 필요한 음식이었고, 버터를 먹을 권리에 대한 논쟁이 종교개혁 당시의 논란거리로 번지기도 했다.(주경철 ‘버터, 섬세한 맛의 승리’). 유럽인들이 호화로운 장식으로 만들며 부를 과시하던 설탕의 달콤한 맛은 사탕수수농장에서 착취당하던 노예들의 죽음을 대가로 즐긴 맛이었다(최주리 ‘달콤한 설탕의 씁쓸한 그림자’). 조선의 사대부들은 “선비가 절개를 지켜 죽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복어를 먹고 죽는 게 녹록하게 사는 것보다 낫지 않겠나?”라고 장담하며 자진해서 목숨을 걸고 복어국을 먹기도 했다(안대회 ‘치명적 유혹의 맛, 복어국’).

진(gin)과 맥주, 두 가지 술의 흥망사에선 먹거리를 규제하거나 권장하면서 국민을 들었다 놓는 국가의 통치술을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초, 조금만 마셔도 쉽게 취하는 저렴한 진이 유행처럼 번져 노동자들이 생산력을 잃어가자 국가는 극단적인 주세법과 여러 가지 정책을 동원해 진을 규제했다. 그러나 관리 가능한 취기를 제공하고 비위생적인 물의 대체제로 훌륭하게 쓸 수 있었던 맥주는 국가가 권장했다(민자영 ‘맥주가 영국을 흥하게 하리라’).

또한 18세기는 교류의 시대이기도 했다. 조선에 들어온 고추는 고추장의 형태로 제왕의 식탁에 올랐다. 깐깐한 성미 때문에 자주 입맛을 잃곤 했던 영조는 탕평책을 부정하는 신하 조종부의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유달리 좋아해, 조종부는 미워해도 그 집 고추장만은 도저히 미워하지 못했다(정병설 ‘영조의 식성과 고추장 사랑’). 쇠고기를 대놓고 먹는 것을 금기시하던 일본에서는 ‘쇠고기 환약’이라는 이름으로 은밀한 육식이 이뤄졌다(김시덕 ‘조선의 쇠고기 환약’).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곳에선 말하고 즐기며 생각을 나누는 행위도 뒤따랐다. ‘천천히 퍼지는 독약’으로 불린 커피는 프랑스 대혁명을 일깨운 기폭제였다(이용철 ‘프랑스 대혁명을 일깨운 커피와 카페’). 와인은 사람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서게 하며 예술혼을 일깨우는 영혼의 물방울이었다(김태훈 ‘와인, 철학과 사랑을 꽃피운 영혼의 물방울’).

이 책은 ‘한국18세기학회’가 일반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지난 2012년 9월부터 2013년 7월까지 격주 간으로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됐다. 또한 2012년과 2013년 봄ㆍ가을, 같은 내용으로 개최된 학술발표대회는 대중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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