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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마지막 7분
21일 새벽(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피아졸라의 탱고곡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의 선율이 흐르자 ‘여왕’의 우아하면서 역동적인 몸짓이 시작됐다. 힘찬 도약에 이은 완벽한 착지, 때로는 우아한 스핀, 경쾌한 스텝이 이어지면서 4분10초가 지나갔다. 소치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연기가 끝나자 김연아에게 갈채가 쏟아졌다. 하루 전 쇼트 프로그램에서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란 선율에 2분50초 동안 몸을 맡겼던 여왕의 마지막 무대였다.

‘마지막 7분’은 그렇게 끝났다. 스페인어로 ‘안녕’을 뜻하는 ‘아디오스’란 곡의 제목처럼 김연아도 은반을 떠났다. 우리도 ‘어릿광대’가 아닌 ‘피겨 퀸’을 보내야 할 시간을 결국 맞이하고 말았다. 이후 전개 과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홈 텃세를 넘어선 의심스러운 판정, 편파 판정을 뒷받침할 만한 증언, 국민적인 공분, 그리고 의젓한 김연아가 뒤섞이고 있다. 하지만 김연아의 메달색깔이 피겨여왕의 위대함을 깎아내리진 못할 것이다.

피겨스케이팅은 ‘비현실적’ 운동이다. 보통 사람들은 걷기도 힘든 빙판 위에서 강약을 조절하고, 몸을 도약해 점프를 해내야 하는 완벽한 스케이팅 기술은 당연하다. 발레에 못지않는 예술성이 더해져야 한다. 제목부터 편곡까지 좋은 음악이 뒤따라야 하고, 그에 맞게 안무도 조화로워야 한다. 여기에 수많은 눈이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다. 실수는 허용되지 않지만 엉덩방아를 찧는다 해도, 감정을 추스를 겨를 없이 예정된 연기를 펼쳐야 한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라는 체코의 육상 영웅 에밀 자토펙의 말처럼 스포츠가 인간 본능에 충실한 것이라면 피겨는 스포츠의 일반적인 정의와 한참 어긋나 있다.

김연아가 마지막 7분을 연기했던 곳이 ‘빙산 궁전(아이스버그 팰리스)’란 것은 철저하게 관객의 시선이다. 7살 때부터 피겨를 시작했던 김연아에게 얼음판은 궁전이 아니라 감옥 같은 곳이었는지 모른다. 김연아가 몇 년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딸을 낳으면 피겨를 시키겠느냐는 질문에 “절대, 절대 안 시킬 거예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를 세계 최고의 피겨 여왕으로 끌고 온 좌우명은 ‘No Pain, No Gain(고통 없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이다. 우리는 그가 ‘얻은 것’만을 보고 있지만, 김연아에겐 ‘고통’의 시간들이 훨씬 길었을 것이다. 빅토르 안이 소치에 입성하면서 헬맷에 붙였던 문구 역시 ‘No Pain, No Gain’이었다. 파벌 싸움의 와중에 국적까지 바꿔야 했던 안현수 역시 소치 3관왕의 영광을 착잡한 심정으로 보고 있지만, 안현수에겐 그동안 겪어야 했던 고통의 나날들이 먼저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김연아를 떠나 보내는 마음이 아쉽다. 하지만 여왕이 정점에서 홀연히 사라져야 ‘7분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21일 새벽 포털사이트는 김연아 관련 검색어로 뒤덮였다. 검색어 1위는 ‘김연아 은메달’ ‘편파 판정’ ‘소트니코바’가 아니라 ‘연아야 고마워’였다.

전창협 디지털콘텐츠 편집장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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