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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를 통해 들여다본 인간의 욕망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1402년 조선 태종 2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됐다. 이 지도에는 조선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당대 세계 최강의 제국인 명나라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되 세계를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각을 갖추고자 했던 조선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16세기 중엽에 제작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에선 유럽과 아프리카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조선의 대외관계가 명나라와 일부 조공국의 교류로 좁아지면서 축소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욕망하는 지도(RHK)’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가진 세계지도 12개를 중심으로 지도에 숨겨진 당대 제작자와 사용자의 욕망을 파헤치며 인류의 세계관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인 역사학자 제리 브로턴 영국 퀸메리대학교 교수는 과학, 교류, 신앙, 제국, 발견, 경계, 관용, 돈, 국가, 지정학, 평등, 정보 등 12개의 욕망 코드를 통해 지도가 사회적 욕망을 반영한 시대의 거울임을 보여 준다.

지도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와 집필의 성과를 이 책에 집대성했다. 저자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지도를 비롯해 중세 유럽의 세계지도, 구글어스의 위성지도 등을 현장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설명하며 독자들이 지도에 대한 입체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돕는다.

저자는 피타고라스의 이론과 중력이론, 동양의 개천설과 혼천설 등 각종 이론을 쉽게 풀어 지도 제작 원리를 설명하고 데카르트와 뉴턴, 이성계와 권근 등 역사 속 인물들이 지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종횡무진으로 엮은 수많은 사료를 통해 광대한 지식의 바다를 펼쳐낸다.

1507년 독일의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만든 ‘우주형상도’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지도이지만, 성경이나 기존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 ‘아메리카’는 당대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 아니어서 지도에 수록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네덜란드에서 1662년에 출간된 상업적 지도책인 요안 블라외의 ‘대아틀라스’는 과학적 원리보다는 시장성을 고려한 다양한 자료들을 반영하고 있다. 18세기 카시니 가문이 국토를 직접 측량해 만든 최초의 국가 지도인 프랑스 지도는 국가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실체가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강리도’는 세계 최강의 고대 제국에 지도 제작으로 대응한 것이며, 조선이 자국의 자연 지형과 정치 지형을 동시에 인식해 만든 지도다. 중국과 조선은 경험을 활용해 지도를 만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지도는 단지 지리적 정확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구조적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강리도’와 그 사본은 작지만 당당했던 새 왕조가 덩치가 훨씬 큰 제국의 영역 안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218쪽)


“구글노믹스의 중심에 구글의 지리 공간 애플리케이션이 있다. 기업이 애드워즈로 광고 대상을 효과적으로 겨냥할 때, 구글어스와 구글맵스는 실제 공간과 가상공간에서 상품의 위치를 알려 준다. 마이클 존스는 최근 강의에서 ‘지도의 새로운 의미’를 거창하게 선포하며, 지리 공간 애플리케이션이 결정적인 용도를 찾았다고 했다. 존스는 인터넷 지도를 ‘사업장’으로, 즉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거래하는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으로 정의한다.”(602~603쪽)

저자는 “모든 지도는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정확하고 객관적인 지도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지도를 이용하는 우리는 날카롭게 벼린 시각으로 지도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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