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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올림픽] <이해준의 소치레터> 경기장 떠나갈듯한 안현수 응원 함성
한국의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화려한 금빛 레이스를 펼친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올림픽 파크엔 비가 내렸다. 아침엔 가늘던 비가 갈수록 굵어져 경기장 주변엔 을씬년스런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이번 동계올림픽 개막 초반 15도를 웃도는 이상고온에 이어 이번엔 빗방울이 관중들을 괴롭혔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성화 불꽃이 외로워 보였다.

이날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경기장에선 3종목의 경기가 열렸다. 여자 1000m 예선과 남자 500m 예선이 펼쳐졌고, 마지막으로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이 열렸다.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의 박승희ㆍ심석희ㆍ조해리ㆍ김아랑 선수가 귀중한 금메달을 수확한 3000m 계주 결승전이었다. 이 메달은 한국이 이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거둔 첫 금메달이라는 점에서 큰 선물이었다. 하지만 실제 경기장 분위기를 지배한 것은 따로 있었다. 러시아 선수들이었다.

이번에 러시아에 불고 있는 쇼트트랙 바람은 생각보다 강했다. 아이스버그 경기장을 가득 메운 러시아 관중들은 자국 선수들이 출전할 때마다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고, 발을 구르며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뜨거운 응원을 펼쳤다. 더욱이 경기장 가운데 천장에 매달린 대형화면으로 박진감 넘치는 중계방송까지 제공돼 열광의 도가니가 연출됐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를 끈 선수는 안현수(빅토르 안)였다. 앞서 출전한 러시아 선수들이 대부분 예선을 통과한 상태여서 안현수가 등장할 때엔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장내 중계방송 아나운서가 ‘빅토르 안은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으로, 이번 소치에선 1000m 금메달을 땄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관중들은 거대한 함성으로 화답했다.

쇼트트랙 경기가 열린 아이스버그 경기장에서 러시아 관중들이 뜨거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박진감 넘치게 펼쳐졌다. 안현수는 초반에 약간 뒤처졌지만 중반을 넘자 상대선수들을 차례로 제치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러시아 관중들은 미칠듯한 함성으로 안현수를 응원했다. 그가 맨 처음 결승선을 통과하자 관중들은 “러시아! 러시아!”를 연호했다. 이날 아이스버그 경기장에서 “러시아! 러시아!” 구호가 나온 건 이게 처음이었다. 안현수는 손을 들어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러시아 응원단은 경기장이 흔들리도록 발을 구르며 “와~”하고 함성을 터트렸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나서면서 한국에서 온 스포츠 용품 및 의류업계 응원단 참가자와 이날 경기 관람 소감을 주고받았다. 그는 한국 여자선수들이 금메달을 따 응원의 보람이 있다면서도 안현수의 경기와 러시아 관중들의 반응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섭섭하죠. 안현수가 ‘대~한~민~국~’ 소리를 들으면서 경기를 했어야 했는데….”

경기장을 나서자 빗발이 아주 굵어져 있었다. 소치의 봄을 재촉하는 듯한 빗줄기였다. 인종과 국적을 떠나 멋진 경기를 펼친 선수에 갈채를 보내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8년 전 태극마크를 달고 얼음판을 질주하던 선수가 다른 나라 유니폼을 입고 갈채를 받는 것이 못내 씁쓸했다. 빗줄기가 한국 응원단 가슴을 파고 들었다.

소치=이해준 기자/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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