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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닫힌 미술관, 늦은밤 그 곳에선 무슨 일이…
아트선재센터 ‘6-8’전
저녁 6~8시 열리는 특이한 전시
주차장·기계실·한옥 등 건물 곳곳서
파격적 미디어 설치전시 선봬 눈길


잠든 공간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학창시절 휴일이나 방학 때 아무도 없는 학교에 가 본 경험이 있다면, 시끌벅적하던 공간이 고요해졌을 때 몰려오는 생경함과 두려움, 자유로움이 섞인 공기를 기억할 것이다. 하루의 의무를 마친 공간은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한다.

종로구 아트선재센터는 ‘6-8’전 이라는 이름아래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만 열리는 ‘특이한’ 전시를 기획했다. 일반적인 미술관이 문을 닫는 시간부터 시작되는 전시는 ‘당연히’ 전시장에서 열리지 않는다. 지금껏 전시공간으로 사용된 적이 없던 주차장, 마당, 한옥, 옥상, 기계실, 계단 등 건물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정해진 동선도 없다. 작가들이 제작한 지도를 들고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작품을 만나면 그만이다. 작품이 아닌 양 숨어 있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세심하고 눈 밝은 관람객에게 유리하다.

로와정(노윤희, 정현석), 리경, 염중호, 이악, 이원우가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는 건물의 입구인 주차요원 부스부터 시작된다. 번쩍이는 부스 안엔 디스코 볼이 돌아간다. 가까이 다가서면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 1악장이 희미하게 들린다. 뒤 돌아서면 전시 안내가 있어야 할 라이트박스에 문장이 써있다. 중간중간 생략된 단어로 잘 읽히진 않지만 전체 뜻을 이해하는 덴 무리가 없다. 보르헤스의 소설 ‘픽션들’ 따온 문장이다. 로와정의 작품이다.

염중호 ‘소원을 말해봐’,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4.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리경은 아트선재센터 마당의 한옥에서 작업했다. 한옥에서 빛과 어둠, 안개 속 울려퍼지는 사운드를 활용해 신체와 공간이 일체되는 느낌을 선사한다. 관람객이 정해진 지점에 서면 공명하는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린다.

염중호는 미술관 주변 환풍구, 배수구, 옥상에 돌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했다. 예로부터 돌탑을 돌거나, 돌을 쌓아 소원을 비는 행위에 착안했다고 한다. 돌엔 풀로 글귀를 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먼지가 쌓여 선명하게 드러난다. 설마 저것이 작품일까 싶은 환풍구엔 ‘헉’, 허리를 굽히고 ‘빨리’ 지나가야 하는 기계실엔 ‘빨리빨리’, 인왕산이 바라보이는 옥상엔 ‘우왕좌왕’(우인왕 좌인왕) 이라는 글씨를 남겨 놨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옥상에서 이뤄진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기다시피 해 도착하면 경복궁과 청와대까지 한눈에 보이는 장대한 야경이 펼쳐진다. 예전엔 기무사 때문에 활용하지 못했던 공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의 의도치 않은 선물이다.

이원우의 온실 설치작업에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라는 작품 제목처럼 세상에서 사라지는 경험 혹은 세상이 사라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밴드 ‘삐삐롱스타킹’의 멤버였던 권병준과 김근채(이악)의 ‘서울 비추기’는 헤드폰을 쓰고 손전등으로 서울의 곳곳을 비추면 특정한 소리가 들린다. 방향과 각도에 따라 들리는 소리가 다르다. 청와대 쪽에선 어떤 소리가 들릴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전시는 3월 29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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