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상윤ㆍ김윤희ㆍ박수진ㆍ신동윤 기자] 경기 침체로 빚 부담이 짓눌린 기업들의 ‘속성 다이어트’가 한창이다. 알짜 자산이라도 현금으로 바꿔 급한 불을 끄려는 시도다. 그런데 알짜들이 많은 만큼 이들 자산의 향방은 업계 지도를 재편할 변화의단초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하반기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 당장 사자고 나서는 동종업체는 없지만, 결국 이들 자산의 최종 귀착지가 어디냐에 따라 업계 판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천에 펼쳐진 ‘韓ㆍ中 철강지도’= 동부그룹이 내놓은 동부제철 인천공장은 철강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냉연강판 70만t, 아연도금강판 65만t, 컬러강판 43만t 등 연 227만t의 생산능력을 갖췄고, 지난 해 약 8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특히 주력인 컬러강판이 국내 시장의 20%를 점유할 정도다.

M&A 경쟁의 양상은 ‘국제전’ 모양새다. 중국 바오철강은 최근 해외 채권 발행을 통해 5000억여원을 조달했다. 인천공장 인수를 위한 준비라는 해석이 많다. 인천공장 냉연설비를 이용해 자사 열연제품의 수요처로 이용하고, 더 나아가 한국 컬러강판 시장 등으로 진출할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국내업체는 인수에 시큰둥하다. 최근 몇년 간의 집중적인 대규모 투자와 경기 침체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여력이 없다. 하지만 중국 업체가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한국 수출기지로 활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그래서 업계 맏형인 포스코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동부그룹 채권단도 내심 국내 업체가 인수해가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박경현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주임연구원은 “동부제철의 냉연 기술 및 인력이 중국으로 유출될 경우 중국 철강업체가 저가격에 품질까지 확보하게되면서 제품 경쟁력이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운 ‘빅2’의 알토란 자산+팬오션…판도변화 시한폭탄= 해운업 불황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벌크선과 LNG운송이라는 알짜 자산을 사모펀드(PEF)에 넘겼다. 그런데 PEF가 언젠가 이 자산을 매각해 수익을 챙기는 것이 목표다.결국 이들 자산의 최종 향배에 따라 해운업계의 지도가 변할 수도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업계 3위였던 팬오션(구 STX팬오션)은 아직 인수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업계 쌍두마차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최근의 유동성 위기로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당분간 해운시장은 M&A로 인해 지형이 바뀔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메모리반도체 시장 지도 바꿀 동부하이텍= 동부그룹이 내놓은 동부하이텍은 삼성전자 독주 체제였던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시장을 삼성과 SK의 양강구도로 재편할 핵심 키(key)로 주목받고 있다.

가장 유력한 잠재후보는 SK다. 올 들어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출신의 비메모리 전문가를 최고경영자급으로 잇따라 영입했다.

박성욱 사장도 아예 “시스템 반도체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며 비메모리 시장 강화의지를 공언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와 동부하이텍의 비메모리가 시너지를 창출, ‘국내 1위’ 삼성전자와 본격적인 양강 체제를 이루는 것은 물론 세계 시장점유율도 신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타이어 시장판도 바꿀 금호타이어 향배=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 졸업에 맞춰 채권단이 보유한 전환사채(CB)를 포함한 지분 53.3%에 대한 주인을 찾을 전망이다. 일단 세계 8위 업체인 일본 요코하마타이어가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다. 최근 기술 및 자본 제휴를 위해 양사가 활발히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가 신흥국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톱5 수준으로 도약했지만, 요코하마가 금호를 통해 신흥시장에 기반을 갖추면 세계 타이어시장에서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다만 금호타이어측은 “실제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채권단이) 박삼구 회장 등 금호아시아나그룹 오너에게 우선매수권을 주거나 블럭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해 경영권의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김영진 M&A연구소 소장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생존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M&A다. 하지만 해외 기업이 들어와 기업을 공중분해해 이익만 취한 뒤 나가는 것은 제도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며 “정책적으로 부실 자본이 M&A 시장에 들어와 기업을 인수해 피인수 기업과 함께 무너지는 경우를 막을 수 있는 규제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