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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부모님 안 모시고, 자식과도 생이별…한국, 너무 각박해요”
다문화 가정 며느리 시선으로 본 ‘新이산가족시대’
자신 낳아주신 부모님들인데…
왜 모시기 꺼리는지 이해안돼

한국에서 처음 들은 ‘기러기아빠’
자녀교육 올인하는 현실 슬프기도

주말부부는 최악…뭐하러 결혼했나

신(新)이산가족은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이 됐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눈에 이러한 한국 가족의 ‘생이별’은 매우 기이한 현상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다문화 가정의 며느리들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신이산가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지난 5일 오후 2시께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위치한 승리다문화비전센터에서 만난 다문화 가정 며느리 8명은 한국의 신이산가족 현상에 대해 하나같이 “고향에서는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으로 2010년 한국 남성과 결혼해 4살 난 아들을 두고 있는 조미화(31ㆍ여) 씨는 ‘독거노인’에 대한 질문에 “베트남도 한국과 비슷하게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대부분 부모님을 모신다. 하지만 서로 모시기를 꺼려하는 모습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인데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위치한 승리다문화비전센터에서 다문화 여성들이 각국의 고유한 문화를 교류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9년째 한국에 살면서 9살, 7살, 5살 세 자녀를 두고 있는 몽골 출신 다나(30대ㆍ여) 씨 역시 “몽골에서도 부모님을 홀로 지내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몽골은 딸이 어른들을 모시는 경우도 많다. 굳이 아들이 모셔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러기 아빠’ 역시 이들은 한국에서 처음 알게 된 말이라고 답했다. 한국말이 유창한 다나 씨는 “우리 남편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으니 ‘내가 못한 것을 아이에게 배우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며 “기러기 아빠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집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다른 집의 자녀들은 다 학원을 가는데 우리 애만 보내지 않아 잘못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라고 했다.

2011년 한국에 들어와 2살 자녀를 둔 몽골 출신 알탕졸(27ㆍ여) 씨는 “한국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할 수 있지 않느냐. 만약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안 하면 더 큰 손해잖아요”라고 했다.

같은 몽골 출신 군스마(27ㆍ여) 씨는 “부모님이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한테 미루는 게 아닐까요”라고 했다. 군스마 씨는 이어 “부모로서 자기가 겪은 고생을 자식에게 안 시키려고 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자식에게 고생을 안 시키는 것도 안 좋은 것 같다”며 한국 부모 특유의 과도한 자녀 감싸기를 꼬집기도 했다.

‘주말부부’에 대해서는 이들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다나 씨는 “남편이 북한의 개성공단에 다니는데 개성공단이 오랫동안 닫혔을 때 일이 없으니까 화물차 운전 일을 하기 위해 집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었다”며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생활을 했는데 남편이 많이 불쌍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 이들은 이미 한국인이 됐지만 한편으론 고향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이산가족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특히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면 고향 가족 생각이 많아져 그리움이 더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보통 2년에 한 번 정도로 고향에 다녀왔다고 했다.

6살, 4살 딸 둘을 둔 필리핀 출신 아일린(20대ㆍ여) 씨는 이번 설에 시어머니 댁인 서울 도봉동을 찾아 설날 요리를 도왔고 아픈 시어머니를 돌봐드렸다. 지난해 3월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 푸티카이(20대ㆍ여) 씨는 처음 맞는 설에 대해 “재밌지만 힘들었다. 음식을 많이 만들고 설거지를 많이 해야 해서…”라며 웃어보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경우 한국의 신이산가족 현상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싱가포르 출신 캐런 얍(26ㆍ여ㆍ학생) 씨는 “싱가포르에서도 가장이 가족들을 부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비를 위해 아버지가 희생하는 것은 보편적”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주말부부는 이해가 안 된다. 주말부부로 살 거라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왜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독거노인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부양의 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흉보거나 욕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중국계 호주인 조이 간(27ㆍ회사원) 씨는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슬프다’였다. 결혼이 만들어낸 잘못된 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주말부부 또한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하기 전과 다를 게 뭔가”라고 되물었다.

반면 영국계 홍콩인인 클레어 청(25ㆍ여ㆍ회사원) 씨는 “직장 동료 중에 주말부부가 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지만 그들 말에 의하면 서로 떨어져 있는 탓에 더 애틋하고 싸울 일이 없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주말부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고 했다.

최근 대만에서 주재원 생활을 오래 하고 한국에 돌아온 한 한국인은 “해외 생활을 오래해서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 비교를 하게 되는 데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각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부담, 입시부담 등이 너무 커서 가족 파탄과 이별의 가능성도 높은 것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이지웅ㆍ권재희 인턴 기자/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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