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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이상화와 윤진숙
“밴쿠버(올림픽) 이후 반짝 금메달이라는 말이 정말 듣기 싫어 꾸준히 연습했다. 그리고 이 자리까지 왔다.”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2연패에 성공한 이상화 선수의 우승 소감이다. 실제 그랬을 듯싶다. 4년 전 이상화는 분명 정상권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 당시 세계 최강 예니 볼프(독일)와 2인자 왕베이싱(중국)보다 기록 면에서 한 수 아래였다. 그러나 이들을 따돌리고 극적으로 우승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세계 빙상계가 발칵 뒤집혔다. 선수단조차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외신들은 그의 ‘반짝 금메달’을 타전하기 바빴고, ‘이변’이 있어야 올림픽이라고 떠들었다. 그런 모습들이 이상화는 싫었고 자존심 상했던 것이다. 그는 누구와 대결해도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저 ‘깜짝 주인공’일 뿐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금메달이 결코 반짝이 아니었음을 실력으로 입증하고 싶었다. 밴쿠버의 영광을 뒤로 한 채 그는 곧바로 소치를 준비했다. 한때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상상할 수 없는 고된 훈련을 소화하며 마침내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다. AP 등 주요 언론들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승리’라며 ‘빙속(氷速) 여제(女帝)’의 등극을 침이 마르게 찬양했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멋지게 이겨내고 진정한 챔피언이 됐다. 더 이상 반짝 금메달은 없었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막될 무렵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전격 경질됐다. 8개월 전 윤 전 장관의 발탁은 이상화의 밴쿠버 금메달만큼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해양환경 분야를 전공한 연구원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의 성별조차 몰랐을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야말로 깜짝 발탁이고 출세였다.

세상은 그런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를 빌미로 모진 공격이 시작됐다. 하지만 실없는 웃음만 헤실헤실 날리며 ‘몰라요’만 연발할 뿐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이 구원 등판해 ‘실력은 내가 보증하겠다’며 기어이 그의 목에 장관메달을 걸어줬다. 그쯤에서 그도 오기가 생겼을 것이다. 그를 희화화(戱畵化)하며 낄낄대던 정치인과 세상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인정받는 당당한 장관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을 지켜준 대통령과 해양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도….

그가 인정받는 장관이 되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런 훈련 과정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열심히 내공을 쌓는다는 소리는 멀리서 들려왔다. 하지만 국정감사 등 간간히 출전한 대회 성적은 ‘역시나’였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자질논란은 증폭됐다. 그러다 ‘여수 원유 유출 사건’과 관련한 구설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결국 그는 ‘진주’가 아니라 ‘모래’였고, ‘깜짝 발탁’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장관의 자리는 500m 스케이팅과 꼭 닮았다. “한 치의 실수도 냉정하게 반영된다”는 점이 그렇다. 이상화가 한 말이다. 윤 전 장관도 억울하고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프로의 세계고, 장관의 자리다. 임명자도, 임명권자도 함께 되새겨볼 일이다.

정재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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