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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 - 박영서> ‘새 역사단계’에 진입한 양안관계
11일 오후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 자금산장(紫金山莊). 미리 도착해 손님을 기다리던 중국 측 대표 장즈쥔(張志軍)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은 대만 측 대표를 만나 반가운 악수를 여러 번 나눴다.

분단 65년 만에 열리는 역사적인 첫 장관급 회담을 앞두고 장 주임은 “옛날에는 우리가 여기서 만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면서 “어려움을 풀려면 우리 모두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번 회담은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간 1949년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정부 대 정부 공식회동이다. 중국과 대만 언론들은 ‘신(新)이정표’, ‘신기원’ ‘중대 돌파구’ 등의 표현을 써 가며 이번 회담이 양안 관계의 새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남북관계와 자주 비교된다. 중국의 진먼다오(金門島) 포격은 중국과 대만의 대립을 상징하는 유명한 사건이다.

1958년 8월 23일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 불과 10㎞ 떨어진 대만 진먼다오에 2시간 동안 3만여발이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중국군의 이날 하루의 포격으로 대만군 장성 3명을 포함해 대만군인 600여명이 전사했다.

중국군의 포격은 10월 하순까지 44일 동안 이어졌고 대만도 응수했다. 포성은 1979년 1월 1일 중국과 미국이 국교를 맺은 후 비로소 멈췄다.

상대방에 대한 적의를 내뿜던 양안은 이후 관계회복의 길로 들어선다. 1993년 4월 민간기구인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가 첫 회담을 개최하면서 ‘대치의 시대’는 ‘대화의 시대’로 전환된다.

2001년 양안 간 삼통(三通ㆍ무역 우편 항해) 정책이 시작됐고, 2005년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의 첫 국공회담이 열렸다. 2008년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안관계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런 속도와 분위기라면 오는 10월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마잉주 총통 간 정상회담도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대륙과 대만의 양안관계를 보면 남북통일을 이뤄내야 할 우리가 배워야할 지혜가 많은 듯하다.

‘구이존동(求異存同·다른 점을 가지고 같이 공존한다)’ ‘선경후정(先經後政·경제가 우선이고 정치는 다음이다)’ ‘선이후난(先易後難·쉬운 일이 우선이고 어려운 일은 다음이다)’으로 대표되는 유연함과 실용성이다. 또한 ‘우공이산(愚公移山·우공이 산을 옮긴다)’과 같은 인내와 의지도 우리의 벤치마킹 모형이다.

양안 간 통큰 협상과 그 성과를 곁에서 지켜보자니 부럽기도 하면서 자괴감도 앞선다. ‘통일대박론’까지 나온 마당에 우리도 ‘하나의 한국’으로 나아갈 로드맵이라도 보여줘야만 하건만 별 진전이 없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양안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중국인들의 지혜를 배운다면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박영서 베이징 특파원 py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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