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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누구를 위한 이통 보조금 규제인가?
2013년 겨울을 앞두고 최신형 아웃터가 나왔다. 패션 리더를 자처하는 사람은 출시 직후 백화점에서 100만원을 주고 샀다. 또 알뜰족으로 자부하는 다른 사람은 겨울 끝 물에 아울렛에서 40만원에 샀다. 앞에 사람은 남들보다 빨리 최신 패션 아이템을 즐겼으니 100만원이 아깝지 않다 말하고, 뒤에 사람은 유행에서는 조금 늦었지만 그 만큼 싸게 산 걸로 만족했다. 그런데 이걸 ‘심판’이 나서 70만원에 팔라고 한다. 같은 옷이 같은 겨울인데 왜 천차만별 가격에 팔리냐는 논리다. 언뜻 보면 100만원을 주고 산 사람은 30만원을 덜 줘도 되니 좋아할 것 같다.40만원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도 좀 더 빨리 입을 수 있으니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두 사람은 모두 툴툴거렸다. 100만원을 낼 의향이 있는 사람은 ‘남들보다 핫 아이템을 먼저 입는’ 즐거움을 빼앗겼고, ‘가격 인하’를 기다렸던 사람 역시 절약의 즐거움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효용과 가치는 천차만별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개념조차 머릿속에 지워버린 어설픈 심판이 만든 시장 실패다.

이런 말도 안되는 현상이 21세기 세계 경제 10대 강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내 통신 시장이다. 차기모델 출시가 임박한 스마트폰을 싸게 판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벌때처럼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심판, 즉 정부 당국자들은 ‘시장 과열’이라며 과징금을 매기겠다고 나섰다. 싸게 판게 죄라는 것이다. 친절하게 할인 제한폭 27만원까지 정해줬다. 이제는 ‘법’으로까지 할인폭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문제의 ‘단통법(단말기 유통법)’이다. 단말기 보조금에 쓸 돈을 못 쓰게 하면, 통신사들은 결국 요금인하 경쟁을 펼칠 수 밖에 없다는게 정부 당국자의 논리다. 그러나 통신업자들은 뒤에서 “요금을 왜 내리냐.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날텐데”라며 비웃고 있다. 표정관리하는 옷 판매자 입장인 셈이다.

이 같은 비웃음 뒤에는 지금도 요금인하를 막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정부당국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1위 사업자가 자금력을 무기로 지나치게 싼 요금제를 내놓으면, 영세한 후발 업체는 고사할 수 있으니, 적당히 싸게 팔라는게 요금 인가제를 공정시장 확립을 위한 비대칭규제로 포장하고 있는 정부다. 20년 전 통신시장 초창기에 도입한 이 제도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새벽녘에 별을 바라보며 200m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사태를 ‘창조한’ 정부 당국은 지금이라도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심판의 본분을 되돌아 봐야 한다. “값싼 전화에 대한 욕구, 값싼 단말기에 대한 욕구 등을 우리가 너무 간과한 게 아닌가 한다”는 차관 말이 다시 접대용 멘트로 끝난다면, 권위를 잃은 심판은 결국 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산업부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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