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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박2일’에서 레전드가 나왔다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KBS ‘1박2일‘에서 모처럼 레전드라 할만한 기획이 나왔다. 다시보기로 지난 9일 방송을 보고 감동받았다. 역시 ‘1박2일’ 시즌3는 유호준 PD가 키를 쥐고 있음이 증명됐다. 기획이 좋으면 웃기려고 노력을 안해도 재미와 감동이 따라온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기적처럼 잠드는 1년중 하루, 설날. 빌딩과 인파속에 가렸던 낯선 서울의 얼굴을 찾는 단 하루의 마법 같은 시간여행이라는 자막이 올라올 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아 떠나는 예능인줄 알았다.

하지만 평소에는 바빠서, 사람이 많아서 도저히 생각하기 힘든,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서울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주는 감성을 반추할 수 있게 해준 유 PD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을 정도로 각별했다. 거기에는 따뜻함도 있었고 짠함도 있었다.

여행은 많은 곳을 둘러본다고 해서 효과가 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구경하는 여행’(Sightseeing) 정도는 될지 모른다 하더라도 자신을 만날 수 있고 자아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실존 여행은 아니다. 여행을 하는 ‘나‘의 이야기가 빠져있고, 내가 봐야하는 대상들만 잔뜩 있는 여행일 뿐이다.


유호진 PD의 서울시간여행편은 평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서울의 ‘스팟’들을 둘러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감성과 경험이 묻어나는 주관적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여행자와 시청자는 ‘나‘를 돌아볼 수 있고 각박한 현실을 떠나 추억과 기억, 여유와 환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도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인 대학로 학림다방, 가장 오래된 빵집인 장충동 태극당, 가장 오래된 사무실인 연지동의 대호빌딩, 1483년에 만들어진 중랑천 살곶이 다리, 그리고 구한말 역사를 간직한 서울 중구 정동의 배재학당, 서울시립미술관, 중명전과 구러시아공사관 등 서울 곳곳의 오래된 시간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 무식해서 편안한 김종민과 김준호가 중명전에서 1905년 맺어진 을사늑약이 ‘조약’이 아니라 왜 ‘늑약‘인지 숙지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도 유익한 정보였다.

하지만 압권은 그 뒤에 나왔다. 멤버 두 명씩 짝을 지어 명동성당과 남산, 창경궁으로 가게 해 환희와 열정, 고독을 테마로 각각 사진을 찍어오라고 주문한 미션은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과거와 만나게 함으로써 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마지막에는 제작진이 멤버들의 현재모습과 같은 장소에서 찍었던 부모의 과거 모습과 합성한 사진을 선물로 내놨다.

김주혁은 자신이 사진을 찍었던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김무생)와 어머니가 젊었을 때 찍었던 사진을 KBS 편집실에서 보고 비로소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식을 사랑했지만 엄격했던 아버지를 만나는 짧은 시간, 이런 게 실존적인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차태현도 남산 팔강정에서 부모님이 젊었을때 찍은 사진을 보고 과거를 회상했다. 아버지는 예쁜 어머니를 엄청 열심히 따라다닌 끝에 목적을 달성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김종민은 사진을 찍었던 창경궁의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를 찍었던 젊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여서 눈물이 핑 돌 수밖에 없었다. PD가 김종민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싶냐고 물었을 때 김종민이 “오래 옆에 있는 아빠”라고 답했을 때는 시청자들도 짠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평소 자기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김민종이 ‘1박2일‘에서 가장 자신의 사적이면서도 진솔한 모습을 잘 드러낸 순간이었다.

‘1박2일’ 서울편이 레전드라고 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웬만해서는 김종민에게서 이런 멘트를 끄집어낼 수 없다. 서울시간여행편은 ‘나‘를 돌아볼 수 있고 한 템보 느리게 갈 수 있는 감성을 제공해주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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