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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꾼 박애리ㆍ김준수가 부르는 선녀와 조선 품절남의 연가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니. 무대 위에서는 나를 사랑해줘”

오는 19일~2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창극 숙영낭자전에서 숙영역을 맡은 박애리(38)는 선군역의 김준수(24)에게 가끔씩 이렇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지난해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젊은 소리꾼 김준수에게 박애리는 까마득하게 높은 선생님. 두 사람은 각각 1999년, 2013년 스물세살의 나이에 국립창극단에 들어와 현재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가 됐다.


“창극단에 들어와서 처음 주연을 맡은 게 ‘배비장전’이었는데 그때 상대 배우였던 왕기석 선생님이 저보다 열두살 많았어요. 점점 상대 배우의 나이가 어려지더니 이번에는 열네살 어린 김준수씨랑 함께 공연하게 됐네요. 이 자리에 계속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목소리는 얼굴보다 늦게 나이가 든다고 하잖아요”(박애리)

박애리는 그간 창극단의 주요 작품의 주연 배우를 도맡아왔으며, 지난해 KBS국악대상에서 역대 최연소로 국악대상을 받았다.

“연습을 하다보면 진지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질 때가 있는데 박애리 선생님은 웃지도 않고 매순간 집중해요. 노래를 하나 불러도 항상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면 ‘천상 배우구나’라고 느끼죠. 마흔이나 오십에도 춘향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김준수)


김준수는 어린 시절 TV에서 박애리가 노래하는 ‘춘향’을 보고 창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이름이 같은 그룹 JYJ의 김준수 못지 않게 잘생긴 외모와 애절한 음색으로 창극계의 아이돌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숙영낭자전’에서 조선시대 지체높은 집안의 아들이자 잘생긴 외모로 조기품절남이라 불리는 선군역을 맡았다.

숙영낭자전은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남몰래 읽던 연애소설로 인기가 많아 판소리로도 불렸다. 이번에 창극으로 처음 무대에 오르며, 신영희 명창이 소리를 짜는 작창(作唱)을 맡았다.


극중에서 숙영과 선군은 전생에 못다한 사랑을 이승에서 이뤄 부부가 된다. 하지만 선군을 짝사랑한 노비 매월이 음모를 꾸며 이들의 사랑을 방해한다. 질투에 눈이 먼 여성이 부부 사이를 갈라놓고, 근본도 모르는 숙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시아버지가 숙영을 구박하는 등 조선시대판 ‘사랑과 전쟁’이 펼쳐진다.

국립창극단은 이처럼 대중성을 지닌 멜로 창극 숙영낭자전에 이어 올해 스릴러물 ‘장화홍련’, 에로틱한 ‘변강쇠’ 등 다양한 창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박애리는 “관객들을 울렸다 웃기는 것이 창극과 판소리만의 매력이고 연극이나 뮤지컬에 없는 즉흥적인 면도 장점”이라며 “창극 한편에는 16부작 미니시리즈보다 다양한 재미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판소리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그녀는 남편인 팝핀현준과 KBS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해 우리 소리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박애리는 “국악 명인 선생님들도 ‘불후의 명곡’에 나오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하고 좋아한다”며 “제 특기가 아닌 가요를 불러서 가수들과 경쟁하다보니 성적이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여러 장르에 우리의 소리를 가미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준수도 “어릴 때부터 소리가 좋아서 시작한 저도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거나 위축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소리한다’고 말할 수 있고 자신감도 생겼다”며 “기회가 온다면 박애리 선생님처럼 대중과 거리를 더 좁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애리는 숙영낭자전이 끝난 뒤 공백기에 팝핍현준과 TV 댄스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팝핍현준은 클럽에도 한번 가보지 못한 박애리가 춤을 추는 것을 “생각만 해도 웃기다”며 깔깔거린다고 한다.

그녀는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것은 결국 내가 하는 일에 사람들을 한걸음 당겨오는 일이기도 하다”며 “이 기회에 춤을 배워두면 언젠가 다른 창극에서 춤솜씨를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애리는 아홉살 때 판소리 공연을 보고 “너는 내 운명”이라고 느껴 30여년 동안 한 길을 걸었다. 지난 2011년 전혀 다른 장르에서 활동했던 팝핀현준과 결혼해 딸을 낳았고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박애리는 예술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때도 업고 있다가 “예술이 신발이 떨어졌네요. 신발아 어디가니. 우리 같이 가야지”라며 상황에 맞게 노래를 만들어 불러줬다. 올해 네살인 예술이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변화를 준 아리랑을 듣고도 “아리랑이네”라고 알아차릴 정도로 끼가 넘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있을까요. 예술이가 나중에 커서 그림을 그리든지, 노래를 하든지, 춤을 추든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적극 독려해줄 거예요. 예술을 하다보면 갈피를 못 잡을 때도 있고 자신과의 싸움이 힘들고 외롭기도 하지만 ‘그걸 이겨내면 또 다른 세계가 있어’라고 말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ssj@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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