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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에도 표절은 고질적인 문제였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영의정을 지낸 유영경(1550~1608)은 중국의 사신들 사이에서 ‘동방 최고의 문장’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작품은 모두 당시 동지중추사로 있던 최립(1539~1612)의 작품이었다. 최립은 당대에 이미 8문장가로 꼽힐 만큼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대신 문장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대작(大作)이라는 이름으로 관행처럼 벌어졌다.

‘한시의 품격(창비)’은 조선시대 주류 문화인 한시를 통해 당대의 지식인 사화외 문화를 읽어낸다. 저자인 김풍기 강원대 교수는 혼시가 조선 지식인 사회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고상한 듯 보이는 한시의 세계뿐만 아니라 한시와 더불어 살아가던 이들이 일으킨 잡음까지 포착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옛것을 인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문화에서 표절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자존심을 건 문인들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됐는지, 날선 비평의 세계에서 한시가 어떻게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해지는지 등 조선 지식인 문화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서슴없이 들춘다.

“우연히 발견한 시 한 구절에 김부식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유리처럼 빛나는 저 글자들의 이미지는 범상한 솜씨가 아니었다. 누구의 시인가 봤더니, 과연 정지상의 것이었다.(……) 김부식은 이 시구절을 달라고 정지상에게 부탁했다. 당연히 정지상은 거절했다.(……) 이 일 때문에 입었던 상처를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두었던 김부식은, 훗날 묘청의 난이 일어났을 때 정지상을 그 사건에 연루시켜 처형하였다고 한다.”(135~137쪽)

또한 저자는 한시를 양반만의 전유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저자는 사대부의 시뿐만 아니라 속세를 벗어난 승려의 시 그리고 신분적 불평등을 문학으로 승화한 중인들의 작품까지 폭넓게 살핀다. 이를 통해 저자는 옛사람이 시를 보는 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한시의 세계가 오늘날 우리 삶의 풍경과 다르지 않음을 일깨운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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