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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급 컬렉션이라면 이쯤은 돼야...” ‘20세기미술의 정수’ 오나쉬컬렉션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국내에서는 아트 컬렉터의 층이 좁고, 얕지만 전세계적으로 아트컬렉터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대(代)를 이어서 미술품을 애호하고, 수집하는 가문 또한 적지않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혁신’이 좋아, 또 ‘기발한 독특함’이 좋아 현대미술의 바다에 푹 빠져든 사람이 있다.

독일인 사업가이자, 한때 갤러리스트로 활동했던 라인하드 오나쉬(Reinhard Onnaschㆍ75)가 그 주인공이다. 오나쉬가 수집한 다양하고 독창적인 현대미술품들은 지난해 9~12월 런던 도심의 갤러리 세 곳(하우저 앤 워스)에서 장장 4개월간 전시되며 큰 성황을 이뤘다. 

오나쉬의 방대한 컬렉션 중 골갱이(핵심)에 해당되는 작품 75점을 선보인 이 전시를 보기 위해 런던의 미술 애호가는 물론, 스위스 독일 등지에서도 관람객이 몰려든 바 있다. 반응 또한 뜨거웠다. “20세기 유럽및 미국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어떻게 이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는지 모르겠다”는 평이 이어졌다. 파이내셜타임즈, 뉴욕타임즈 등도 앞다퉈 이 전시를 보도했다.

오나쉬 컬렉션 중 에드워드 케인홀스의 작품. 핵전쟁의 공포를 패러디한 작품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으나 오나쉬는 그 기괴함에 끌려 수집했다. 케인홀스의 이 작품(1962년)은 폴 매카시, 데이비드 하몬스 등 후배작가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사진제공= Hauser & Wirth]
평면에 입체를 최초로 결합시킨 로버트 라우젠버그의 ‘Pilgrim’. 컴바인 페인팅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1960, 201.3x136.8x47.3cm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DACS, London Courtesy Onnasch Collection.[사진제공= Hauser & Wirth]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세계적인 유명화랑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는 여세를 몰아, 미국 뉴욕에서도 판을 벌였다. 뉴욕 맨하탄 18번가 첼시에 대규모 뉴욕 분점을 새로 조성한 이 화랑은 지난 7일 ‘Re-View:오나쉬 컬렉션(Onnasch Collection)’전을 개막했다. 오는 4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 또한 초반부터 반향이 뜨겁다. 개막일에는 뉴욕의 문화애호가들로 장사진을 이뤘다는 소식이다.

그 까닭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오나쉬의 주옥같은 20세기 미술 컬렉션이 본격적으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워낙 대중에게 드러나길 꺼렸던 오나쉬는 서구에서도 별반 알려진 게 없는 인물이다. 오로지 작가들의 남다른 예술성에 주목하고, 그것이 훗날 상업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따지지않은 채 독창적인 작품을 수집하는 데 골몰했던 것이다. 

오나쉬의 컬렉션 리스트를 보면 입이 벌어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즉 1950~80년대까지 20세기 현대미술사를 장식하는 바넷 뉴먼, 로버트 라우젠버그, 래리 리버스, 사이 톰블리, 클래스 올덴버그, 짐 다인, 리차드 해밀턴, 디터 로스, 댄 플래빈, 리차드 세라, 다니엘 뷔렌, 루이스 모리스, 데이비드 스미스, 리차드 세라, 프랭크 스텔라 등의 이름이 올라있다. 게다가 그들의 대표작들을 수집했으니 이를 만천하에 자랑할 법도 했건만 그는 철저히 은둔의 삶을 즐겼다.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지 40여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방대한 컬렉션을 제대로 공개했으니 미술 관계자 및 관람객, 언론의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시규모도 방대해 런던에선 3개의 갤러리에서 열렸고, 뉴욕에선 무려 10개의 전시실에서 작품이 선보여지고 있다.

플랫 회화, 즉 평면성을 강조한 미니멀리즘 회화의 거장 존 웨슬리의 유화 ‘Heat’, 1986. 183x213cm. [사진제공= Hauser & Wirth]

출품작들은 20세기 미국ㆍ유럽의 현대미술을 주도했던 선구자들의 초기및 전성기 작업들이다. 이를 테면 미국 추상표현주의 선봉에 섰던 바넷 뉴먼의 초기 대표작인 ‘Uriel’(1955년작), 율동적인 추상화면을 구사하는 루이스 모리스의 아이콘에 해당되는 작품 ‘Veil’ paintings (1954~59), 클리포드 스틸의 회화 등이 나왔다. 195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시작을 알렸던 이들 작품은 미술관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이후 1960년대, 70년대, 80년대 유럽과 미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보여주는 다채롭고도 혁신적인 작업들이 망라됐다. 

독일 중동부 괴를리츠 출신으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했던 오나쉬는 젊은 시절부터 현대미술에 매료됐다. 특히 그는 여타 컬렉터들이 ‘난해하고 기이하다’며 기피하는 작품을 수집하며 컬렉션을 조금씩 늘려갔다. 남과 다른 것, 새로운 영역에 과감히 도전하는 작가들의 열정과 도발에 주목했던 것이다.

오나쉬의 컬렉션인 프랭크 스텔라의 초기 회화(왼쪽)과 데이비드 스미스의 조각(앞쪽) 등이 내걸린 ‘Re-View:오나쉬 컬렉션’전.[사진제공= Hauser & Wirth]

이제는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꼽히는 로버트 라우젠버그가 자신이 쓰던 낡은 침대커버와 의자 등 잡동사니를 활용한 작품 ‘필그림’을 살 때만 해도 주변에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오나쉬는 회화와 입체를 최초로 결합시키며 ‘컴바인 페인팅’이라는 신(新) 영역을 개척해가려는 젊은 작가의 실험정신을 높이 샀다. 게다가 일상의 오브제를 거침없이 차용한 아이디어도 신선해 이 대작을 구입했다. 오늘날 ‘필그림’은 미국 추상미술을 논할 때, 또 라우젠버그를 논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작품이 됐다.

이 밖에 에드워드 케인홀스의 끔찍하고 엽기적인 입체작품이며, 생뚱맞기 짝이 없는 클래스 올덴버그의 플러그(전기 플러그를 수백, 수천배 뻥튀기하듯 키운 키치적 작품)도 기꺼이 사들였다. 장식적인 작품보다는, 작업의 오리지날리티와 철학 등에 촛점을 맞춰 수집한 것이다. 그런데 상업적 고려 없이, 밀어붙인 그 과단성이 오늘날 역설적으로 재화적 가치까지 불러와 아이러니를 전해준다. 

짐 다인의 유화 ‘Hair’. 183x183 cm ©Courtesy Onnasch Collection.[사진제공= Hauser & Wirth]
전기플러그를 거대하게 확대해 천정에 매단 클래스 올덴버그의 ‘Model for a Mahogany Plug’ 1969. [사진제공= Hauser & Wirth]

남보다 일찍 특급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감식안 때문에 오나쉬의 컬렉션은 서구권에서도 알아주는 컬렉션이 됐다. 베를린과 뉴욕에 각각 갤러리를 운영했던 오나쉬는 독일 작가를 미국에, 미국 작가를 독일에 소개하는 일도 도맡아 진행한바 있다. 친구이자 화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지난 1973년 미국에 처음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지금에야 리히터가 ‘생존작가 중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이지만 당시만 해도 별반 인기가 없어 작품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더구나 오나쉬는 작품판매엔 관심이 없어 상당수 작품을 자신이 떠안곤 했다. 그는 전시를 열 때마다 ‘이 작품은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자주 붙여놓기도 했다. 아트딜러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행동이지만 그렇게 작품을 쉽게 팔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컬렉션은 변화무쌍한 현대미술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계가 모두 위축됐던 금융위기며, 경제불황 시기에도 그는 좋은 작가의 전시와 작품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긴 안목으로 좋은 작품을 선별해 수집했던 그는 결국 오늘날 20세기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수작들을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컬렉터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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