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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계인으로 살았던 40년 건축일생…제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 회고전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경계인의 삶은 고단하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기에, 불편하고 난감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경계인을 고집하는 원동력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개인적 소신과 신념 때문일 것이다.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ㆍ1937~2011)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않는 ‘재일교포’라는 신분은 일정 기간마다 외국인 등록을 위해 10개 지문을 모두 날인해야 하는 불편함과 모욕을 주었고, 성씨인 ‘유(庾)’가 일본에선 쓰이지 않는 한자라 본 이름 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필명인 ‘이타미 준(伊丹潤)’은 오사카의 공항이던 ‘이타미(伊丹)’와 무척이나 친했던 음악인 길옥윤의 끝자(潤ㆍ일본발음 준)를 조합한 것이다.

일반인에겐 제주도 ‘수ㆍ풍ㆍ석 미술관’, 포도호텔, 방주 교회로 유명한 건축가 이타미 준. 살아있는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통해 자연과 동화된 건축의 아름다움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했던 그의 40년 건축인생을 회고하는 대규모 전시 ‘이타미 준:바람의조형’전이 열린다.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건축언어의 기틀을 닦았던 초창기부터 건축 여정의 정점으로 불리는 제주 프로젝트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작가의 아틀리에도 딸인 유이화(41·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씨의 도움으로 그대로 재현됐다. 

제주 `포도호텔` 준초이 사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이타미 준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읽힌다. ‘구로 이타미(검은 이타미)’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검정을 사랑했던 작가를 위해 전체적으로 블랙톤으로 구성한 전시장은, 입구의 나무 벽 사이로 새 들어오는 햇볕만이 바닥에 긴 흉터를 내며 관람객을 반긴다. 전시는 ‘근원-전개1,2,3-바람의 조형:제주 프로젝트-아틀리에’로 이루어져 있다.

‘근원’에서는 청년시절 첨단 건축을 선보였던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존재의 근원을 파고든 ‘모노하(物派)’에 매료됐던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회화, 서예 등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철학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그의 건축언어가 얼마나 단단하고 뿌리깊은 것인지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흔적도 인상깊다. 1970~80년대 한국을 직접 답사하며 저술한 책과 그가 수집한 고미술품은 그의 영감의 원천이 한국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전개 1,2,3’에서는 1971년부터 2010년까지 소재의 탐색, 원시성의 추구, 매개의 건축으로 이야기 되는 건축 인생을 정리했다.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건물 모형, 전개도까지 긴장감 있게 배열됐다.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전개도와 스케치, 모형을 번갈아 보며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이타미 준이 추구하고자 했던 건축에서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 미술관, 사진 김용관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바람의 조형:제주 프로젝트’에서는 그의 대표작들이 선보인다. ‘비오토피아’단지 안의 ‘핀스크 클럽 하우스’를 시작으로 ‘포도호텔’, ‘수ㆍ풍ㆍ석 미술관’, ‘두손 미술관’의 다양한 모습이 전개된다. 또한 정다운 감독의 영상물 ‘또 다른 물, 바람, 돌’도 선보인다 . 30분 분량의 영상물에선 건물이 자연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연과 조응한다는 것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전시장 마지막의 아뜰리에는 이타미 준의 손 때 묻은 책, 메모, 스케치가 전시됐다. 도쿄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에선 손으로 만든 모형들이 쌓여있고, 책장은 건축ㆍ철학ㆍ예술에 관한 서적들로 들어찼다. 건축학도라면, 혹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르면 좋을 전시다. 7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vicky@heraldcorp.com

이타미 준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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