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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캔버스가 아니어도…예술혼은 살아있다
갤러리현대 5일부터‘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展
김환기 종이에 과슈로 산·강·달
박수근 수채 맑은색 서정감 물씬
이중섭은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

유홍준 “외형적 재료·크기 따라
그림가치 평가받는 현실 아쉽다”


‘유화는 완성작, 수채화는 습작, 스케치는 밑그림.’ 편견이 무서운 이유는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유화를 최고로 치는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전시가 열린다. 갤러리현대는‘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이라는 이름 아래 이중섭ㆍ박수근ㆍ김환기ㆍ이우환 등 내로라하는 현대작가 30명의 종이작업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장을 돌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아집과 벽견(僻見)이 단번에 깨진다. 거장의 예술혼은 그것이 캔버스든, 종이든, 담뱃갑 은박지든 가리지 않는다.

전시장을 찾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옥션에서 김환기 과슈(Gouacheㆍ아라비아 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나 종이에 오일 작품이 캔버스에 오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낮은 가격에 낙찰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 한 화가의 작품이 과슈든, 종이든, 천에 그렸든 그건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혼을 쏟아내기 좋은 재료의 선택일 뿐”이라며 작품 자체의 예술성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외형적 재료나 크기에 의해 평가받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환기‘ 새와 달’, 종이에 과슈, 47.3×36.5㎝, 1958

이중섭(1916~1956)은 캔버스에 그린 작품이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 하드보드에 유채나 종이에 수채화, 담뱃갑 은박지 그림이 전부다.

아틀리에에서 우아하게 이젤에 캔버스를 걸고 물감을 들고 그릴 수 있는 시절이 그에겐 없었다. 아내인 야마모토 마사코(92·한국명 이남덕) 여사에게 보낸 연애편지조차 그림으로 그렸다는 일화를 보면 어떻게든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종이조차 사치일 때는 은박지에라도 그렸던 이중섭의 은지화는 그의 예술혼이 담긴 대표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유 교수는 “이번에 출품된 ‘소와 새와 게’ ‘세 사람’ ‘네 어린이와 비둘기’를 보면 절대 스케치가 아니라 ‘종이에 연필’이라는 장르로 보아야 한다”며 예술적 완결성을 보여준 천재화가다운 면모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박수근(1914~1965)은 가난한 화가였다. 그림값 대신 물감으로 달라고 할 정도로 처절했던 가난도 그의 예술혼을 막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생활고 속에서 유일하게 작품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수채화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수채의 맑고 따뜻한 색감은 유채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서정이 물씬 풍긴다. 

박수근 ‘나무와 두여인’, 종이에 연필, 26×20㎝,1956

유 교수는 “ ‘나무와 두 여인’ ‘모자’는 똑같은 구도의 유화가 있지만 수채화가 훨씬 또렷한 형상이다. 아낙네와 노인이 등장하는 ‘군상’은 선묘에 강약과 엷은 채색으로 조형적 완결도가 높다”며 화가의 노력을 읽어냈다.

김환기(1913~1974)는 종이에 과슈 작업을 많이 했다. 밝으면서도 겹쳐 쓸 수 있는 과슈의 특성을 마음껏 구사했다.

과슈의 밝은 색상을 살려 산, 강, 달, 마을을 그린 작품은 보는 즉시 마음이 따뜻해진다.

또한 뉴욕으로 건너가 점 시리즈를 전개할 때 날마다 일기쓰듯 번짐효과를 연구했던 작품도 선보인다. 뉴욕타임스 위에 색상을 칠해 오히려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유화작품과는 또다른, 재료의 물성을 잘 끌어냈다. 

이우환‘ Untitled’, 종이에 수채, 57×76㎝, 1984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종이작업을 모아보니 작가의 내공과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화로 느끼지 못했던 것이 느껴진다”는 유 교수의 말처럼, 유화로만 익숙하던 작가의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양감을 잘 드러낸 크로키는 본격적인 조각에 앞서 실험을 거듭한 작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읽힌다.

‘손이 마려워 가만히 있지 못했다’는 작가들의 예술혼은 재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전시는 2월 5일부터 3월 9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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