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시인 박노해..‘순환 순수 순명’의 아시아 오지에 주목하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100만부가 넘게 팔린 시집 ’노동의 새벽‘의 시인 박노해가 또다시 사진전을 연다. 저항시인에서 지구촌 오지를 유랑하는 방랑자 작가로 변신한 그는 내달 5일부터 ‘다른 길’이라는 타이틀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사진전을 연다. 그의 사진전은 이번이 세번째. 중동 지역에서 찍은 사진들로 꾸몄던 첫 사진전 ‘라 광야’전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전에 이은 작품전으로 전시 규모가 만만치 않다.

시인이자 노동운동가였던 박노해는 암울했던 1980년대 시대를 대표한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7년여 수감생활을 한 그는 자유의 몸이 된 이후론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곤 낡은 흑백 필름카메라와 만년필 한자루를 들고 지난 15년간 전세계 곳곳을 누볐다. ‘우리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파인더에 담기 위해서다.

박노해의 사진작품 ‘파슈툰 소년의 눈동자’ Drosh, Khyber Pakhtunkhwa, Pakistan, 2011. ⓒ박노해

이번 사진전은 아시아가 주무대다. ‘인류 정신의 지붕’인 티베트에서부터 과거 천국으로 불렸으나 이제는 절망의 땅이 된 파키스탄, 두 얼굴을 지닌 인도, 그리고 버마, 라오스, 인도네시아까지, 총 6개국을 누비며 찍은 7만컷 중 흑백 아날로그 사진 120점을 선보인다.

박노해의 사진들은 ‘역광’과 ‘절제된 빛’을 특징으로 한다. 사진은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이라고 믿는 시인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던 존재들을 역광으로 촬영함으로써 감동을 배가시킨다.

시인은 “지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가장 인간성이 쇠약해진 시대. 가장 지식이 많고 똑똑해진 시대이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정작 나 자신과는 가장 멀어진 시대”라며 “따라서 문명전환이 필요한데 나는 아시아에서 새 길을 찾았다. 그 것은 ‘순환 순수 순명’이다“고 했다.

박노해는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는 아시아 토박이마을로 들어가 마지막 남은 희망의 종자를 채취하듯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그의 사진 속 아시아는 ‘눈물의 땅’도, 신비화된 ‘오리엔탈 아시아’도 아니다. 척박한 역사를 품고 정직한 절망 끝에 길어올린 진솔하고 애잔한 ‘희망의 삶‘이다. 

야크 젖을 짜던 티벳 엄마가 아이 젖을 먹이러 천막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포착한 박노해의 사진 ⓒ박노해

가파른 산동네를 물항아리를 이고 사뿐사뿐 오르는 인도 여성을 찍은 사진에 박노해는 이런 시를 붙였다.
”인디아 여성 농민은 누구나 최고의 건축가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손수 디자인해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불편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고쳐나간다. 부드러운 살결같은 흙벽에 청명한 하늘빛을 닮은 인디고 블루를 칠하고, 흰 쌀가루를 개어 그림을 그린다“.

라오스 깊은 산 속 아카족마을의 학교에서 만난 순정한 눈망울의 어린이들, 손수 지은 아담한 흙집에서 전통 차를 끓이며 언 몸을 녹이는 파키스탄 가족들, 버마의 인레 호수에서 작은 조각배에 의지한 채 고기잡이하는 어부 등이 렌즈에 포착됐다. 

박노해의 사진작품 ‘인디고 블루하우스’.Gafa village, Rajasthan, India,2013. ⓒ박노해

시인은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진실, 그리고 진정한 인간해방을 향한 새로운 성찰을 하는데 사진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한다. 마침 올해는 시집 ’노동의 새벽'이 출간된지 꼭 30년이다. 새로운 사상을 천착하고,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기 위해 시인은 전시타이틀을 ‘다른 길’로 명명했다. 우리가 고집했던 지금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번 사진전 수익금은 ‘사진 속 주인공’들을 위해 쓰인다.

전시 취지에 공감한 가수 이효리·윤도현, 배우 황정민·장현성, 개그맨 김준현 등이 박노해 사진에 대해 담담히 얘기를 들려주는 홍보 영상 제작에 나섰다. 전시는 오는 3월3일까지. 작품전에 발맞춰 사진에세이 ‘다른 길’도 펴냈다.

yr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