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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판 ‘소황제’ 마케팅 만개
[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골드 미스 한모(35) 씨는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에게 책가방하고 옷을 사준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주머니 사정은 빤하기만 하다. 조카 친구는 자기 이모가 버버리 책가방하고 원피스를 사줬다고 자랑을 한다고 하는데 가격을 알아보니 입만 떡 벌어진다. 가방 하나에 62만원, 체크 원피스 29만원…. 조카 한 명 입학하는 데 등뼈가 휠 정도다.

‘재물 복이 있다’는 속설을 안고 태어난 황금돼지띠가 ‘돈덩이’로 변하고 있다. 태어날 때는 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유모차를 타고, 600만~700만원을 들여 호텔에서 돌잔치를 한 것도 모자라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꼭두 새벽부터 긴 대기줄을 서야 했던 황금돼지띠들이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황금돼지띠’를 겨냥한 상술도 하루가 다르게 넘쳐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물론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들까지 온 가족이 지갑을 톡톡 털고 있다. ‘소황제’를 위한 중국의 무분별한 마케팅과 소비 행태가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일부 브랜드의 프리미엄 키즈라인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구찌 주니어, 버버리 주니어 등 해외 수입 브랜드 키즈라인은 지난해 12월 47% 매출이 늘어난 데 이어 올 1월(22일 기준)에도 49% 신장했다. 그중에서도 버버리 주니어 책가방(62만원)과 트렌치코트(68만원), 체크원피스(29만원) 등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빈폴 브랜드의 경우 프리미엄 라인의 가방은 수량이 부족해서 물건을 받는 데 며칠이 족히 걸린다. 전국에 재고도 몇 개 안 남았다고 한다. 빈폴에서 가장 인기 있는 21만원대 남학생용 책가방세트는 이미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 이전에 품절됐다. 추가적으로 리오더를 했지만 예약 판매도 이미 끝났다고 한다. 닥스 브랜드의 18만원대 책가방세트도 이미 이달 중순 품절돼 이달 말 추가로 리오더를 한다.

지난주 말 빈폴키즈 매장을 찾은 서울 서초동 홍지형(37) 씨는 “주변에서 봐도 우리 아이를 돋보일 수 있도록 입학 초기에 고급 브랜드들의 상품을 선물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가벼워진 지갑으로 가격대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에 큰 용기를 내어 구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빈폴키즈 문미영(43) 매니저는 “과거에는 매장방문 후에 가격대를 보고 몇 번 구매를 망설이던 고객들이 지난해 말부턴 프리미엄 라인을 선호하고 있다”며 “이마저도 물량이 부족해 구매하고 싶어도 바로 가져가지 못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빈폴키즈’ ‘닥스 키즈’ 등 학생용 가방 물량이 부족해 주요 인기 상품은 이미 품절된 상태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학생용 가방 매출이 이달(23일 기준)에만 전년 동기간보다 무려 83.2% 증가했고,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들의 학생용 운동화도 68.3%나 늘었다.

황금돼지띠의 마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구 브랜드 리바트의 경우 올 들어 학생가구 주문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3% 늘었으며, 한 달에 30만~50만원을 들여서라도 아이들의 키를 크게 하기 위해 한의원을 찾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박승만 하이키한의원 원장은 “황금돼지띠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서 자녀들의 키 성장과 관련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본격적으로 입학 시즌이 되면 치료를 원하는 주부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금돼지띠가 돈덩이가 되고 있는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황금돼지띠 자녀들이 태어난 2007년 당시 120만원 스토케 유모차가 불티나게 팔렸으며, 아기 전용 안전모(10만6200원)와 레오폴드 자이언트 인형(15만6000원) 등 당시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값비싼 유아용품의 해외 구매대행이 인기를 누렸다.

이듬해인 2008년에도 황금돼지띠들의 돌잔치로 호텔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해 4월에 이미 12월까지 돌잔치 예약이 꽉 찼으며, 돌잔치 예약률이 전년에 비해 50%가량 늘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인당 5만~6만원대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황금돼지 자녀들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호화 돌잔치를 한 셈이다.

원정운 신세계백화점 아동 바이어는 “2006년과 2007년 당시 명품 유모차로 통하는 노르웨이 스토케가 120만원대의 고가에 판매됐는데도 한 달에 100여대 가깝게 판매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며 “저출산 시대에 고가 수입 유아용품으로 아이를 치장하는 ‘골든베이비’ ‘명품맘’ 등의 신조어도 황금돼지해 당시에 처음 등장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아동스포츠 MD팀 최은경 CMD는 “올해는 황금돼지띠로 불리는 2007년생들이 입학하는 해로 신입생 수가 예년보다 4만~5만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매출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며 “애지중지 키우는 자녀를 위한 용어로 과거 식스 포켓 원 마우스(six pockets one mouse)가 처음 나오더니 최근에는 골드 앤트 원 마우스(Gold Aunt one mouse)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아이가 귀해진 사회 현상과 맞물려 조카나 손자, 손녀를 위한 선물상품으로 책가방이 화두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스 포켓 원 마우스(six pockets one mouse) = 부모 이외에 양가 조부모가 자녀 한 명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

▶골드 앤트 원 마우스(Gold Aunt one mouse) = 재정적으로 안정화되고 경제력이 있으며, 조카를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는 고모나 이모. 미혼의 이모ㆍ고모까지 포함한 ‘에잇 포켓 원 마우스’와 비슷한 의미로 쓰임.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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