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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장 자신의 눈으로 살펴본 거장의 모든 것…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출간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특별히 강하지도 않고 특별히 재능이 많은 것도 아니다. 나는 약점을 보이는 게 싫은 사람이고, 그저 남에게 지기 싫어서 노력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그뿐이다.”(277쪽)

세계적인 거장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1910~1998)의 자서전 ‘구로사와 아키라-자서전 비슷한 것(모비딕)’이 출간됐다.

이 책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라쇼몽’으로 세계적인 감독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지난 1936년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어 1943년 ‘스가다 산시로’로 데뷔해 인기감독으로 떠올랐다. 1951년 ‘라쇼몬’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저자는 1953년 ‘이키루’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1954년 ‘7인의 사무라이’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1976년 ‘데루스 우잘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1980년 ‘가케무샤’가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다. 1990년 저자는 아카데미영화제에서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인생사의 부침을 겪는 와중에서 가족으로부터 인내의 힘을, 스승으로부터 배려와 사랑을, 친구와 동료들로부터 우정과 예의를 배우는 과정을 솔직하게 묘사한다. 특히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예술을 접하게 해주었던 멘토이자 형인 헤이고의 자살과 그때를 전후해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는 장면, 또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에게 치열함과 인간미를 배우는 장면 등이 눈길을 끈다. 또한 세상의 영욕을 다 거친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담백함과 친근하고 따뜻한 문장에선 거장의 또 다른 인간미가 느껴진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허식 없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 ‘라쇼몽’ 시나리오는 그런 허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렸다. 아니, 죽어서까지 허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죄를 그렸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업이고, 인간의 구제하기 힘든 성질이며, 이기심이 펼치는 기괴한 이야기다.”(311쪽)

“천사처럼 담대하게, 악마처럼 집요하게”는 저자가 영화를 만들 때 항상 마음에 담고 있던 문구였다. 여기엔 영화의 주제나 정신을 구현할 때는 천사처럼 대담하고 광활하게 구성하되, 작품의 세부적인 묘사를 할 때는 악마처럼 세심하고 집요하게 작업하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이러한 정신과 태도가 삶 속에서 어떻게 배양되고 각인돼 자리를 잡았는지 그 생생한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책 말미엔 저자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조언도 실려 있다.

세계 영화사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한 거장으로 평가받는 저자가 어떤 행로를 거치면서 성장과 시련 그리고 도전과 배움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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