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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하루 매출 2000만원…화투치던 할머니들 이젠 통장보는 재미에 푹
로컬푸드의 성공사례, 완주군을 가다
고령농가·소농 등 생계 위협받던 농가…
절박함서 시작했던 완주군의 실험 그후 3년
효자·모악산·용진 3곳 직매장 안정적 매출
주말이면 2000여명 문 밖까지 줄설 정도

농민들은 직매장서 직접 바코드 붙이고
단골들은 물건 아닌 생산자 믿고 구매



[완주(전북)=오연주 기자] “지금까지 먹은 딸기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임민규(47)ㆍ박원희(44) 씨 부부는 최근 고객에게서 기분 좋은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딸기박스 포장지에 있는 생산자의 연락처를 보고 고객이 문자를 보낸 것. 경기도에 살다가 4년 전에 귀농해 ‘겁없이’ 딸기농사를 시작한 이들 부부는 어느덧 로컬푸드(Local Food) 예찬론자가 됐다.

박 씨는 “유통비용으로 수수료 10%만 내면 되고, 상품을 가져다놓으면 팔아주니 얼마나 좋으냐”며 “맛있는 딸기 잘먹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소비자를 직접 만나면서 농가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로컬푸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전했다.

지난 15일 완주로컬푸드 모악산점에서 만난 풍경도 이들 부부의 활기찬 미소와 닮아있었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키운 농산물을 직접 가지고 와서 진열하는 농민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다. 장을 보는 이들과 “시금치는 뿌리가 붉고 굵은 것이 좋다”며 담소를 주고받는 모습은 영락없는 옛 시골장터다.

로컬푸드 1번지 완주는 ‘얼굴있는 먹거리’의 성공적인 현주소다.

▶통장 보는 재미에 빠진 할머니…농민 살린 로컬푸드=2010년께 시작된 완주군의 로컬푸드 실험 동기는 절박함이었다. 고령농가, 소농이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지역 농산물을 지역 식탁에 바로 올리는 로컬푸드로 농촌공동체를 살리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판매방식에 익숙한 농민을 참여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로컬푸드 사업 초기 설명회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단 2명의 농민이었다.

이에 완주군은 장터사업부터 시작하면서 농민을 찾아 발로 뛰며 부족한 점을 채워나갔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농촌 위기 극복을 위해 완주군이 선택한 열쇠는 ‘로컬푸드의 전면적인 실행’이었고 이는 유통과 먹거리 선택권에서 철저히 소외된 농민과 시민을 먹거리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재조직하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로컬푸드의 성공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농민은 이제 로컬푸드 없는 완주를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아침이면 물건을 직매장에 가지고 와 손수 바코드와 가격표를 부착하는 것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수수료 10%를 제외한 판매금액이 일주일 단위로 정산되기 때문에 여느 월급쟁이 못지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효자점 기준으로 출하농가의 74.6%는 60세 이상 고령농이다. 마을 경로당에 모여 화투를 치던 할머니들은 이제 어르신들이 꾸리는 두레농장에서 일하면서 늘어나는 통장 잔고 보는 재미에 푹 빠졌고, 새 오토바이를 사고 신이 난 80대 할아버지도 있다.

직매장에 쌈채소를 내다팔며 월 200만원이 넘는 수익을 너끈히 올리는 박희자(63) 씨는 일명 ‘쌈채소의 여왕’으로 불린다.

박 씨는 “처음에는 과연 팔릴까 걱정도 하고 망설였지만 지금은 진열대에 상품이 떨어지면 언제 또 나오냐고 묻는 고객 문의가 바로 올 정도”라며 “손주들 돌보는 데 부족함이 없고, 이제는 농사짓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내 채소가 더 잘 팔릴 수 있을까 전략을 짜는 일이 힘들다”며 웃었다.

현재 완주로컬푸드는 효자점, 모악산점, 용진점 등 3개 직매장이 하루 매출 2000만원 이상을 거두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올해 2곳이 더 문을 연다. 이처럼 직매장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완주는 지학사 중학교 사회교과서 ‘일상생활과 환경문제’편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 로컬푸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완주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쌈채소로 대박이 난 박희자 씨는 일명‘ 쌈채소의 여왕’으로 불린다. 다음날 아침 직매장에 낼 상추를 준비하는 박 씨의 손길이 분주하다(왼쪽).‘ 귀농부부’ 임민규ㆍ박원희 씨는 4년 전 딸기농사를 시작하면서 로컬푸드 직매장과 함께 성장해왔다. “농작물도 손을 타줘야 한다”며 딸기를 정성스럽게 가꾸던 부부가 함께 미소짓고 있다. 
[완주=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레스토랑, 가공센터…로컬푸드 지속가능성 높인다=로컬푸드 매장의 단골은 물건 고르는 방법도 특이하다. 물건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애용하는 생산자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는 것. 농민 하나하나가 브랜드가 된 셈이다.

직매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주부 이경완(57) 씨는 “생산자가 바로 가져오는 상품이기 때문에 믿고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며 “지금까지 품질과 가격에 대만족했고, 설사 가격이 비싸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직매장을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전주에는 ‘짝퉁’ 로컬푸드까지 우후죽순 등장했다.

주말이면 평일의 배 수준인 2000명가량이 직매장을 찾아 문 밖까지 줄을 설 정도로 완주군표 로컬푸드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이에 완주군은 자체인증기준을 통해 인증마크를 부착하고 있다. ▷완주농축산물 취급비율 95% 이상 ▷1.0㏊ 이하 지역소농의 참여비율 60% 이상 ▷포장, 진열, 가격 결정 등 농가직접참여 원칙 ▷판매금액 농가환원비율 최소 85% 이상 ▷중간매매조직의 공공성 담보 등 엄격한 10가지 조건을 갖춰야 인증마크를 달 수 있다.

완주로컬푸드는 다음 단계로의 도약도 열심히 준비 중이다. 직매장과 밥상꾸러미 사업 외에 부가가치를 높이는 가공산업 진출을 위해 농민가공센터를 세웠고 모악산점에 선보인 로컬푸드 레스토랑 등은 새로운 사업모델이다. 또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 분석해 기획생산을 확대하고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으로 전면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올해 2월 완주로컬푸드는 협동조합으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로컬푸드 사업 추진에서 종자돈이 된 완주군 출자금과 농ㆍ축협 출자금 12억9500만원은 출자자에게 되돌리고, 새롭게 1000여명의 생산자가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이 탄생하는 것이다.

딸기농사를 짓는 임 씨는 “처음에 왜 거기 물건을 내느냐고 했던 주변 농민이 이제는 다함께 협동조합에 가입하러 갈 것”이라며 “로컬푸드가 완주를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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