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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러 대혼란기…신흥국, 외환위기 교훈 되새겨라
‘강(强)달러 시대, 신흥국에 또 한 번의 재앙이 닥칠 것인가.’

지난해 5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를 시사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이 요동친 이후 신흥국 ‘제2 외환위기설’은 테이퍼링 이슈가 회자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나 ‘예고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었을까. 브라질, 터키, 인도, 인도네시아 등 경상 적자국을 중심으로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신흥 시장은 전반적으로 예상밖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달러 혼란’이라는 제하의 기획기사를 통해 “달러 강세로 신흥 시장에 다시 한번 재앙의 닥칠수 있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금융의 허약성을 절대 과소평가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신흥국 ‘달러 중독’ 해소?=미국 테이퍼링발(發) 신흥국의 충격은 ‘이번엔 다르다’ vs ‘여전히 취약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신흥국에 2차 외환위기는 없다’는 주장에는 달러 중독의 ‘원죄’가 희석됐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FT는 “신흥국 현지 채권시장 규모가 10조달러에 달한다”며 “위기 방어벽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달러표시 부채가 줄어들면서 달러 강세로 인한 부채 부담도 함께 줄었다는 의미다. FT는 특히, 한국과 브라질을 거론하면서 이들 국가가 달러 표시 부채를 줄이고 최고의 자금조달 수단인 현지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흥국 중앙은행의 실탄도 두둑하다. 이들이 쌓아둔 외환보유액은 2013년 중반 7조5000억달러를 기록했다. 10년 전 1조2000억달러에 비하면 비약적인 증가다.

신흥시장 전문 애쉬모어 연구소의 장 덴 대표는 “작년 여름 혼란은 투자자들이 단순히 생각없는 닭들처럼 행동한 결과”라면서 “이들은 닭장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신흥시장은 올해 세계 최고의 자산 운용 성과를 보일 것”이라고 낙관했다.

▶신흥국 여전히 취약=그렇다고 신흥시장 비관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신흥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호조로 글로벌 자금이 신흥시장으로 모여 들었지만, 달러 강세가 진행되면 조달 비용이 올라가면서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FT는 “달러 강세는 수년 내 신흥시장 가장 큰 시험이 될 것”이라면서 “‘원죄(달러 중독)’는 개선됐을지 모르지만,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흥국의 1990년대 달러 표시 부채 평균은 80%로 최고점을 찍은 뒤 지난해 46%으로 대폭 줄었다. FT는 이를 두고 “큰 개선이지만, 달러 부활이 가속화하면 신흥국의 부채 부담이 여전히 늘어날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신흥국들이 달러화 차입을 줄일 수는 있지만, 외국인 자금 조달 의존도는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FT는 말레이시아와 멕시코와 같은 국가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현지 채권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점을 상기키시키면서 이들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부문 취약성은 더욱 눈에 띈다. 2007년 이래 신흥국 기업과 은행이 발행한 채권만 1조2000억달러에 달한다. 기업은 환율변동에 대비해 헤지(위험회피) 수단을 강구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월가 대표 투자은행인 모간스탠리는 “인도의 2250억달러에 달하는 회사채의 절반이 헤지상품에 가입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FT는 “심각한 위기가 도래하면 이것이 결국 시스템적인 문제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 도산이 은행을 쓰러뜨리고, 결국엔 국가까지 연쇄적으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 둔화 발목=여기에 신흥국의 임금인상과 물가상승, 통화가치 절하와 경상수지 적자는 고질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의 경우 2008년 이래 계속된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FT는 “브라질이 대차대조표를 유지하기 위해 달러 유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그 만큼 달러 강세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금 엑소더스(대탈출)에 대한 방어 수단도 마땅치 않다. 금리인상 카드는 이미 포화상태다. 인도 기준금리가 7.75%, 인도네시아 7.5%, 브라질 10%로 이미 고금리 정책을 펴고 있어 운신의 폭도 좁다.

또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막겠다며 신흥국 중앙은행이 보유했던 미국 채권을 매각하면, 미국 국채수익률을 끌어올려(가격 하락) 신흥시장은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과 자국 간의 금리차가 더 벌어져 신흥국에서의 자금 유출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FT는 “달러 부활이 과거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2014년 최대 리스크는 Fed의 양적완화 축소가 글로벌 자금 조달 비용에 보다 즉각적인 충격이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여기에 신흥시장의 중심 동력인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또 다른 ‘와일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M&G자산운용의 펀드매니저 마이클 리델은 “만일 역사가 어떤 가이드(안내)를 준다면, 달러 강세는 개도국에 나쁜 뉴스”라면서 “우리는 현재 미동의 단계에 있고 얼마간 이것이 지속되겠지만, 곧 ‘큰 것’이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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