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배한 야스쿠니 신사에는 진주만 습격을 단행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난징 대학살을 주도한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조선 총독으로 강제징용ㆍ징병, 공출에 앞장선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이들 전범들의 반인륜적 범죄를 인정하는지 아베 총리에게 공개 질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아베 총리는 이들의 명백한 전쟁 범죄에도 눈을 감을 것으로 보인다.
래리 닉쉬 한미문제연구소(ICAS) 박사는 논평을 통해 “아베 총리에게1948년 도쿄 국제전범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하는지 공개 질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닉쉬 박사는 “아베 총리가 도쿄 전범재판소에 의해 유죄가 확정된 A급 전범 14명에게 참배한 것인지, 또 전범재판소의 재판결과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들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인지가 이번 참배 논란의 핵심”이라며 “(유죄 인정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와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관계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달리) 한국 정부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능하다”면서 “한국과 미국언론도 사설 등을 통해 공개적 질문을 던져야 하고 아베 총리가 판결을 거부하거나 답변을 회피한다면 주변국은 당연히 그를 비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정부가 A급 전범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하더라도 아베 총리는 유죄를 인정할 가능성이 적다. 이미 아베 정부는 A급 전범들의 전쟁범죄를 부인하거나 미화하는 내용을 역사 교과서에 강제로 싣고 있기 때문.
뉴욕타임스(NYT)는 26일 최근 일본의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위원회가 ”역사 교과서에 정부 견해에 맞는 기술을 반드시 포함시키라“는 검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지적하며 “1937년 난징 대학살과 독도·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자국 정부의 시각을 우선 반영하면서 주변국과 갈등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정부는 난징 대학살에서 살해된 민간인 수가 확실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간 증거가 없으며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최종적으로 종료됐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결국 A급 전범들의 죄목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자라나는 세대에 강제적으로 가르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베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지역 학교 관할권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키로 해 지방 정계를 이용해 보수 교과서의 채택률을 높이려는 의도도 내비쳤다. 또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달 말 오키나와(沖繩)현의 다케토미(竹富) 마을이 소속 교육 당국의 결정에 맞서 우익 성향의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자 이례적으로 직접 시정을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때 다케토미 마을 주민들은 일본군의 강요로 정글로 거처를 옮기면서 말라리아 등에 수백 명이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일본 내부에서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가 전몰자 추모 시설로 사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교도통신이 28~29일 실시한 긴급전화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54.6%는 야스쿠니 신사가 아닌 새로운 전몰자 추도시설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A급 전범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분사(分祀)하는 것에는 ‘분사하는 편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도 49.0%로 ‘분사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응답한 34.6%를 훨씬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