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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진작에 하지...국회의 도행역시(倒行逆施)
대학교수들은 2013년의 한자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 기대와 달리 인사와 정책 등 분야에서 퇴행적으로 후퇴했음을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차례를 거꾸로 시행한다’는 이 말의 원뜻을 새겨보면 정부 뿐 아니라 국회에도 꼭 들어맞는다.

새누리당과 정부의 다주택 소유자의 양도세중과세 폐지, 민주당의 전월세상한제 도입 등은 이미 여러 달 전에 논의되던 주장이다. 소득세율 구간을 조정하자는 논의는 2012년부터 있었다.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 주장은 지난 봄 추가경정에산 편성 때부터 제기됐었다. 모두 벌써 결론이 나도 몇 번이 났을 법한 사안들이다. 그런데 여야는 예산안 처리시한을 코 앞에 두고서야 이 민감한 사안을 시장에서 흥정하듯 벼락치기다. 진지한 논의와 여론 수렴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실상은 국가정보원 개혁 등 비(非) 민생 사안에 시간을 다 허비한 탓이다.

그동안 다주택 소유자나 전월세 세입자들은 관련 법안 처리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지경이었다. 기업들은 새 해 세법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른 채 이미 사업계획을 짰다. 국민들은 새 해 목전까지 앞으로 세금을 얼마나 내야할 지 모르는 깜깜이 처지였다.

국정원 개혁 등 정치 사안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다고 정쟁으로 민생까지 발목 잡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나마 국회선진화법 덕분에 새 해부터 예산안은 매년 12월 2일 본회의에 자동상정돼 처리될 수 있게 됐다. 이제 ‘예산안 볼모’라는 구태는 끝날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민생 발목잡기까지 사라질까? 또다른 핑계와 구실로 민생의 발목을 잡을 여지는 충분하다.

교수들이 뽑은 2013년 한자어 2위는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격’이라는 뜻의 ‘와각지쟁(蝸角之爭)’, 3위는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히다’라는 뜻의 ‘이가난진(以假亂眞)’이다. 모두 국민이라는 대의(大義)보다 정당의 이익이라는 소아(小我)에 충실한 지금 국회에 어울린다. 새 해가 끝날 때 쯤에는 이런 말들이 다시 등장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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