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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실망’에 당황한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기습 참배 파장이 전방위로 확산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미국의 강경 반응에 적잖히 당황하는 모습이다. 일본 재계는 이번 사태가 한국과 중국의 반일감정을 자극해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본 언론도 ‘아베노믹스 암운’을 우려하면서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물론 내년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강경반응 예측 못했다”=니혼게이자이신문은 27일 미국이 ‘실망’이라는 공식 반응을 내놓은 것에 대해 “이례적인 우려 표명”이라며 “일본 정부도 미국의 이런 반응까지는 읽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26일(현지시간) “아베 총리도 미국이 이례적으로 우려를 표명할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시 하는 아베 총리와 주요 각료들은 서둘러 뒷수습에 나섰다. 아베 총리는 집권 자민당의 인터넷방송에서 “여러가지 오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진화의 제스처를 취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은 캐럴라인 케네디 재일 미국대사에게 전화해 총리의 참배 취지를 설명했다. 케네디 대사는 “본국에 전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27일 오전 미국의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전화 협의를 갖고 오키나와 후텐마기지 문제와 함께 아베 총리의 참배에 대한 이해도 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경제에 전념할 때가 좋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국영방송 NHK는 “이들은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는 “이제 아무도 (아베를)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도 당일 통보를 받았고, 미국에도 참배 직전까지 알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日기업, 반일시위 경계감 고조=일본 기업들은 이번 사태로 2012년 9월 중국에서 발생한 반일시위가 부활하는 것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내년 1월 31일 중국 춘절 연휴를 앞두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할 우려가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간신히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사태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발생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2012년 당시 중국내 반일감정으로 일본차 판매는 전년대비 30~50% 급감했다.

재팬매크로어드바이저의 타쿠지 오쿠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중 무역이 2000년 이래 3배 가까이 급증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번 일로 중국과의 무역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정치적 불안이 일본의 경제 성장과 기업 경영의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일본 재계는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일본 상공회의소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 회장은 총리의 참배가 “심사숙고한 결정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며 “그 이외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11월 재계 인사 180명을 대동해 중국을 방문한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도 향후 영향을 우려하거나 관련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일본 언론도 등돌려=일본 언론은 비판적인 논조가 우세했다. 6개 유력지 가운데 4개지가 비판적인 사설을 게재했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27일자 사설에서 ‘독선의 헛된 참배’라면서 “전후 70년을 앞둔 마당에 언제까지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신문은 “아베 총리의 무책임한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며 “총리가 어떤 이유를 댄다고 해도 참배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 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 때문이 아니라 총리의 행동은 일본인이 전쟁을 대하는 방식에서부터 안보, 경제까지 광범위하게 심각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외국 귀빈도 거리낌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새 추도시설을 만들라”고 촉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야스쿠니 참배가 가져올 쓸모없는 알력’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범을 신격화하는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일본은 ‘경제 살리기’가 최대 과제”라며 “굳이 국론을 양분하는 정치적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고 적었다.

이 신문은 또 ‘애국심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애국심이 너무 뜨거워지면 인권 무시와 주변국과의 마찰 등을 가져온다”며 “그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진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내년 4월 일본 방문에 영향을 줄 우려도 있다고 전망했다.

보수 성향의 일본 최대 일간 요미우리신문도 사설을 통해 “왜 지금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며 “미일 관계를 가장 중시하는 총리의 오산이 아닐까” 반문했다. 또 “외교 재건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국립추도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며 파장 진화와 대안 마련을 주문했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외교 고립을 자초하는 잘못된 길”이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반면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유족 등 국민과의 약속을 완수한 평화 유지에 필요한 행위”라고 추켜세웠다. 신문은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면서 “야스쿠니 본전(本殿) 이외에 진레이샤(鎮霊社)를 참배한 것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신문은 진레이샤에 외국 전몰자들의 영혼도 모셔져 있는 점을 상기시켰다. 주변국 반발에 대해서는 “일본 문화 간섭하지 말라”면서 “안보와 교육재생, 역사인식 등의 문제도 자신감을 가지고 꾸준히 아베 색깔을 내세우고 나갈 것”을 당부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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