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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알 수다 · 억지식 노래 앞에…김광석도 김준수도 없었다
창작뮤지컬 ‘디셈버’ 리뷰
뮤지컬 ‘디셈버’<사진>의 중심을 차지한 것은 김광석도, 김준수도 아닌 장진의 수다스러움이다. 고 김광석의 미발표곡 2곡을 포함해 24곡의 편곡권과 뮤지컬로는 유일하게 김광석 초상권 사용권, 요즘 가장 잘나가는 영화 배급사 뉴(New)의 투자, 유명 영화ㆍ연극 연출가 장진, 블루칩 배우 김준수까지.

흥행 요소를 제대로 갖춘 제작비 50억원 규모의 이 뮤지컬은 그럼에도 대학로의 소극장 연극 한 편을 본 것 같은 감상을 남긴다.

뮤지컬 극작과 연출이 처음인 장진 특유의 다변(多辯) 때문이다. 극 중 조연인 훈이 아버지의 당뇨병 근황, 국회의원이 된 40대 훈이의 활동상을 TV뉴스로 깨알같이 전하는 그의 수다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사족인 경우가 많았다. 1막 학생 시위 진압 등 다소 긴 장면과 유머는 있지만 스토리의 연계성은 떨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전체 감정선을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배경은 1992년인데, 감수성은 그보다 앞선 80년대에 가깝다. 하숙생 지욱이 운동권 여학생 연이를 만나 사랑을 깨닫고(1막), 40대에 잘나가는 공연 연출가가 된 지욱이 첫사랑인 죽은 연이와 닮은 화이에게 끌리는(2막) 내용이 줄거리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나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처럼 노랫말에 맞춰 주변부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전체 맥락이 약하다.

1막의 마지막 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제외하곤 뇌리에 남는 곡이 별로 없다. 노래로 이야기를 잇는 게 아니라 대사로 이뤄진 각 장면에 노래를 끼워넣다 보니 분량이 늘어나 전체 공연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는다.

김준수는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 연기보단 노래가 주인 뮤지컬에서 돋보였다. 이번에 오열, 분노, 코믹한 연기까지 무난하게 선보인다. 오소연 등 출연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연이 회상 장면에서 미디어파사드 기법을 쓰는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연출도 있긴 하다.

16일 개막 첫날 공연시간은 무려 3시간40분이었다. 제작진은 둘째 날부터 3시간10분으로 줄였고,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수정 보완하겠단다.

지난 17일 번역 자막 없이 꿋꿋이 관람하던 한 일본 관객은 좋아하는 스타의 노래가 별로 많지 않아서인지 휴식시간에 자리를 떴다.

티켓가격이 최고 14만원이다. 대극장 뮤지컬의 감동을 기대하고 10만원 이상을 기꺼이 치른 관객에게 미완성작을 내놓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연출 태도 아닌가.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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