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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정은 회장의 결단, 현대그룹 미래는?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현정은<사진>현대그룹 회장은 말이 무거운 사람이다. 말이 앞서는 일이 거의 없다. 그 무게는 침묵 뒤에 이어지는 행동에 그대로 실린다. 위기의 순간, 그 무게있는 결단이 힘을 발휘한다.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지난 10년 간 현대그룹을 이끌며 숱한 위기를 마주할 때 보여줬던 현 회장의 일관된 모습이다.

현 회장이 또 한번 결단을 내렸다. 그동안 유동성 위기에 몰린 현대그룹을 두고 업계 안팎의 ‘설왕설래’에도 침묵을 지키던 현 회장이 고심 끝에 내놓은 자구계획안은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내용이다. 핵심은 금융업 철수다. 현대증권을 포함한 금융계열 3개사를 팔기로 한 것이다.

현대증권은 현대그룹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회사다. 1962년 설립된 국일증권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7년 인수하면서 현대그룹 금융사업의 주춧돌이 됐고, 고 정몽헌 회장이 2000년 ‘왕자의 난’ 에서 승리했을 당시 현대증권은 현대건설과 함께 경영 기반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단순히 핵심 금융계열사로서의 역할을 넘어 지금의 현대그룹이 옛 현대그룹의 명맥을 이어받는 ‘정통(正統)’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회사인 셈이다.

이미 지난 2010년 현대건설을 현대자동차그룹에게 넘겨주며 한 쪽 날개를 잃었던 현 회장에게 현대증권은 정통을 이어갈 마지막 기반이었다. 하지만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이 해운업 불황으로 힘을 쓰지 못하며 그룹 전체가 유동성 압박에 내몰렸다. 현 회장에게는 사실 카드가 많지 않았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금융권에서 일찍부터 현대증권을 핵심으로 하는 ‘주력 계열사 매각’을 요구해왔다. 여기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한진그룹, 동부그룹 등이 3조원 이상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안을 내놓으면서 현대그룹에 대한 압박도 더욱 커졌다. 결국 현 회장은 정통을 포기하고 미래에 힘을 싣는 결단을 내렸다. ‘통탄의 결단’이다.

현대그룹은 이번 자구계획안을 바탕으로 3조3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1조3000억원 규모의 부채를 상환해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 등 주요 3개 계열사의 기준 부채비율을 올해 3분기 말 493%에서 200% 후반대로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2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해 추가 자금 수요에도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환점을 맞은 현대그룹의 앞날은 ‘해운’과 ‘대북사업’으로 점철된다. 현대상선이 그룹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를 견고히 하고 대북사업을 담당하는 현대아산이 현대그룹의 정통과 명맥을 잇는 역할을 한다. 현대엘리베이터(산업기계)와 현대로지스틱스(물류)가 수익성 강화를 통해 이들을 뒷받침 한다. 해운과 대북사업이 전면에 서고 산업기계와 물류 산업이 그룹의 수익 창구로 발돋움하도록 사업 구조를 재편한다는 게 현대그룹의 방침이다. 이를 위해 현대상선은 구조조정 및 업무개선을 추진하고 나머지 계열사도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물론 우려도 있다. 해운 시황이 점차 살아나고 있기는 하지만 조선업에 비해 회복세가 더딘 것이 사실이다. 본격적인 업황 회복은 2015년 정도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글로벌 컨설팅 업체를 통해 손익 개선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운영효율성 향상과 비용 절감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자력으로 불황을 타개하는 것이 녹록치는 않다. 게다가 머스크, MSC, CMA-CGM 등 글로벌 1~3위 선사들이 가세한 글로벌 해운연합체 ‘P3’의 출범으로 타 선사들의 피해가 예상되는 것도 수익 개선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남북관계도 대북사업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현대아산은 2008년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된 후 지금까지 약 6000억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올 해는 정몽헌 회장이 타계 10주기를 맞는 해다. 현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현 회장의 10년은 녹록치 않았다. 2003년에는 시숙인 정상영 KCC명예회장과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 2006년에는 시동생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현대중공업 대주주)와 지분매입 경쟁, 2010년에는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대건설 인수경쟁을 벌이는 등 범(汎)현대가와 잇따라 경영권 분쟁을 겪어왔다.

그룹의 회생을 위해 내린 현 회장의 쉽지 않은 결단이 과연 현대그룹에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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