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투자 및 고용 확대보다 자사주 매입(바이백)에 눈독을 들이는 기업들이 급증해 우려를 낳고 있다. 바이백을 통해 주식 유통량을 줄이면 주당순이익이 늘어나 단기적으론 기업과 주주에게 이익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주주의 이익을 보전해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과도한 자본을 끌어씀에 따라 정작 투자에는 소홀해지고 있다”고 16일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비리니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 편입된 30대 기업이 올해 선언한 바이백 규모는 2110억달러(약 222조1830억원)로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의 3배에 달했다.
지난달에는 미국 통신장비업체 시스코 시스템즈가 자사주 150억달러(약 15조7950억원) 어치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시스코가 벌어들인 순수입 1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R&D 비용의 2.5배에 이르는 액수다.
또 미국 거대 통신기업 AT&T는 올 들어 자사주를 111억달러(약 11조6883억원)를 매입해 지난해 R&D 투자액 13억달러보다 8.5배 가량 지출했다. 미국 최대 제약기업 화이자의 경우에도 올해 바이백 투자액(115억달러)은 지난해 R&D비용(79억달러)을 훨씬 웃돌았다.
대기업의 바이백 붐에 힘입어 미국 주식시장에서 직접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기업들도 대폭 증가했다. 1985년 52건에 불과했던 바이백 횟수는 올해 885건으로 28년 만에 17배 폭등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의 바이백 규모는 총 7540억달러(약 794조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으로 저금리에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게된 가운데, 경제 회복에 따른 기업 이익 증가분을 주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주주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에 자사주 매입을 압박하고 있는 월가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대표적이다.
특히 바이백을 실시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과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매출이 감소한 기업들로선 바이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체 인력의 5%에 해당하는 4000명이나 감원한 시스코는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바이백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바이백에 대한 경고음도 잇따르고 있다. 주주들의 단기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바이백 때문에 R&D 투자와 고용이 위축돼 장기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윌리엄 라조닉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바이백은)단순한 돈 문제가 아닌 기업의 전략 수정을 의미한다”며 “기업 혁신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승연 기자/sparkli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