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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직한 선율과 노랫말이 펼쳐내는 잔잔하고도 거대한 울림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나이를 먹어갈수록 헐거워지는 감정선을 탄주할 수 있는 선율과 노랫말을 만나는 일은 어려워진다.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이 주변에 많아지는 나이가 되면, 새로운 음악으로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앞이 흐려지는 경험은 결코 흔하지 않은 사건이 된다. 음악이 유행과 세월의 벽을 넘어 보편적인 감동을 전하고자 한다면, 그 출발점은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일상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두 번째 정규 앨범 ‘정직한 마음’은 과장 없는 일상의 언어와 절제된 연주로 보편적인 감동과 서정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최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강아솔은 “앨범을 제작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한동안 잊고 살다가 문득 떠오른 ‘정직’이란 단어였다”며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노래를 만들 당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앨범 제목에도 멋진 표현 대신 ‘정직’이란 단어를 담았다”고 말했다.

정규 2집 ‘정직한 마음’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강아솔. [사진제공=일렉트릭뮤즈]

지난해에 발매된 데뷔 앨범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과 마찬가지로 새 앨범에 담긴 연주 역시 단출하다. 피아노와 클래식기타 중심의 편곡에 첼로, 오보에 등이 가끔 더해지지만 곡 특유의 여백을 해치진 않는다. 여백을 채우는 것은 담담하고도 따뜻한 목소리와 진솔한 가사다. 특히 어머니가 보낸 쪽지의 글귀로 가사를 쓴 타이틀곡 ‘엄마’에선 ‘정직’이란 단어가 그 어떤 수사적 표현보다도 빛을 발한다.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늘 염려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귤을 보내니 맛있게 먹거라”와 같은 특별할 것 없는 안부는 곡의 여백 위에서 가슴 시린 시어(詩語)로 승화돼 짙은 여운을 남긴다. 

강아솔은 “‘엄마’는 객지에서 힘들 때 어머니의 쪽지를 받고 많이 울었던 기억을 더듬어 쓴 곡”이라며 “빈 종이 위에 놓인 연필을 앨범 재킷 사진으로 쓴 이유는 사람이 가장 정직해지는 순간이 연필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두 노인의 대화를 듣고 만들었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제 나까지 일곱 남았네. 이제 수를 세는 데 열 손가락도 채 필요하지 않는군”과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은 여고 동창생을 생각하며 만든 ‘끝나지 않을 이야기’의 “자는 아들 안고 있는 너를 보면 수업 시간에 그렇게 자던 네가 떠올라” 같은 가사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청자를 미소 짓게 때로는 숙연하게 만든다. 앨범의 마지막곡 ‘나의 대답’의 가사 “거짓된 마음들이 돋아나는 세상에 살며 아플까 날 감추는데 익숙해진 건 아닌지. 그대여 난 온전한 그댈 원해요”에 담긴 고백이 종교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앞선 곡들이 차례로 일깨운 일상의 소중함 덕분일 것이다. 이 같은 음악적 특징은 강아솔의 고향인 제주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제주도를 이야기하는 강아솔의 눈빛은 장난꾸러기 소녀를 닮아 있었다.

강아솔은 “제주도 사람들은 바쁘게 걸어 다니면서 음식을 먹는 일이 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어린 시절 나는 늘 넓은 운동장을 남자 아이들처럼 뛰어놀았고 겨울이면 컨테이너박스에 쌓인 파지(상품으로 판매할 수 없는 귤)를 공짜로 가져다 먹느라 바빴는데, 이 같은 경험들이 음악의 여백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제주도는 음악이 소음으로 들릴 정도로 조용한 곳”이라며 “나도 제주도에 오면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다닌다. 제주도는 귓가로 들리는 바람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고향을 자랑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회화적으로 펼쳐내는 앨범의 첫 번째 곡 ‘사라오름’은 이 같은 강아솔의 자랑을 증명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강아솔은 “오는 31일 오후 8시 서울 문래동 재미공작소에서 공연하고, 내년 2월께 단독 콘서트를 펼칠 예정”이라며 “KBS 라디오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에 출연해 장윤주를 만나 수다를 떨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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