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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마가 삼켜버린 모정
[헤럴드경제=윤정희(부산) 기자] 지난 11일 오후 9시35분께 부산 북구 화명동의 한 아파트 7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대 주부 홍모(34) 씨와 홍 씨의 어린 자녀 세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홍 씨가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화마 앞에서 안간힘을 쓴 정황이 발견돼 주위를 숙연하게 하고 있다.

화재 사고 발생 직후인 이날 오후 10시께 “현관 쪽에서 화재가 발생했어요. 도와주세요” 어머니 홍 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119 전화로 연결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화재는 진압됐지만 아파트 내부는 대부분 검게타 성한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연기가 잦아들 무렵 어머니 홍 씨와 한살배기 딸, 여덟 살짜리 아들의 시신은 발코니에서, 아홉살 큰딸의 시신은 현관문 쪽 작은 방에서 각각 발견됐다.

신고 내용으로 미루어 현관쪽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홍 씨가 현관 옆 작은방에 있던 아홉살 큰 딸은 미쳐 구하지 못하고, 다른 두 아이를 데리고 발코니로 피신했지만 끝내 화마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홍 씨와 아이들의 시신을 발견한 소방관은 “거실에서 나오는 불길을 막으려는 듯 등을 돌린 채 온 힘으로 두 아이를 양팔로 감싸고 쓰려져 있었다”며 “‘나중에 시신을 분리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꼭 안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불길이 덮치는 상황에서도 어머니 홍 씨는 어린 두 아이를 살리려 온몸으로 불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화재가 발생하기 3시간 전인 오후 6시께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남편은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했다가 비보를 듣고 달려와 시신을 붙들고 오열해 주위를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들 부부는 조그만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도 주말이면 가족나들이를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을 정도로 단란했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이 아파트 관리원인 김모(68세)씨는 “평소에도 이 가족은 늘 밝고 건강한 모습이어서 주위를 기분 좋게 만들었는데, 화재 탓에 한순간에 생이별 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사고 불과 15분 전 남편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도 아이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잠시 짬을 내 아내와 마지막 통화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또 한 번 숙연하게 했다.

cgn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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