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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응답하라 문화융성/이해준 문화부장
연말 송년회 시즌이 피크를 향해 가고 있다. 안부를 묻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열심히 달려온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에 대한 희망을 나누는 자리이며, 무심히 지나쳤던 지인들과의 네트워크를 점검하는 자리다. 삶의 고단함과 소리없이 다가오는 생존의 위기에 대한 토로에서 시작해 평소 챙기지 못했던 사랑과 의리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건배사가 줄을 이으면서 송년회의 밤은 깊어간다.

오랜 친구들과 연말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화제가 좀 심드렁해지자 이런 질문을 불쑥 던졌다. “올해 가장 즐거웠던 때는 언제였어? 행복했을 때...” 난데없는 질물에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하루하루 닥치는 일 처리하느라 바빴지, 뭐.’ 하는 반응이다. “그래도 99%가 힘들었다면, 1%는 있을 거 아냐...” 하고 좀더 집요하게 말을 던지자 천장을 응시하며 입을 연다. 한결 같이 소소한 개인의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가족과 여행을 갔던 일, 친구들과 어울려 흥겨운 시간을 가졌던 일 등 아주 소박한 이야기다. 나도 마음이 맞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기사로 쓸 때의 희열, 가족과 함께 공연이나 영화를 보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던 때를 이야기한다.

당연한 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행복이란 국가와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거창하고 거대한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국가가 기본적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행복은 개인적인 곳에 있다. 사랑을 확인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사소한 욕망을 충족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칙칙한 사회 이야기로 심드렁해졌던 송년 모임 분위기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즐겁고 명랑하게 바뀌고 술맛도 살아난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정지표의 하나로 설정한 문화융성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행복 증진에 목표를 두고 있다. 개인이 문화향유의 주체가 되도록 사회ㆍ문화적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문화융성을 표방한 정부가 출범 첫해를 보내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문화융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막연하지만 개념을 이해할만 하니 한 해가 간 것 같다. 문화융성의 핵심은 개인과, 각 개인이 긴밀하게 결합해 있는 소규모 공동체가 문화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일이지만, 그 비전을 나누는 것조차 까마득해 보인다.

요즈음 TV 드라마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응답하라 1994’에서도 흥미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1994년은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였다. 북한의 NPT 탈퇴와 불바다 발언, 김일성 사망 등 북한 문제가 혼을 빼놓았고 성수대교 붕괴, 지존파 사건, 주사파 논쟁 등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소소한 데 있었다. 전쟁 우려 속에 사재기에 나서면서도 새벽에 열린 월드컵 경기에 몰입했다. 각 지방에서 올라와 같은 하숙집에서 지지고볶던 청춘들도 사소한 데서 웃고 울었다.

국가적인 거대담론에 문화융성이라는 국정지표가 묻혀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 문화융성이라는 거대담론을 소소한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국민이 문화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당장엔 정치와 경제와 외교, 대북 문제 등이 긴급한 현안으로 보이고, 당장엔 문화가 표가 나지 않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문화에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국민들은 소리없이 외친다. ‘응답하라 문화융성!’이라고.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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