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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대강’ 금융실명제법… 쟁점은?
“아이 통장을 만들어주려고 해요.” 은행을 방문한 한 아이의 엄마가 은행원에게 말한다. 흔한 일상이다. 그러나 이는 ‘금융실명제법 위반(비실명거래)’이다. 엄마가 돈의 주인이지만, 계좌 명의자는 아이다. 그래도 처벌받지 않는다. ‘선의의 차명’으로 인정된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지 20년, 국회에서는 ‘선의의 차명’도 양성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의를 악용해 세금을 피하려는 악덕 차명이 늘어나고, 다수의 금융범죄가 차명거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이유다. 반대 목소리도 있다. 자칫 선의의 차명까지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일단 불법이 드러났을 경우 처벌을 강화하자는 절충안이다.

엄격한 입장은 야당이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발의한 법 개정안은 앞선 ‘내 아이 통장’과 같은 ‘선의의 차명’은 허용해주되 ‘허용 안된’ 차명에 대해선 일괄적으로 ‘법 위반’으로 묶자는 것이 골자다. 이른바 ‘열거주의’다. 동창회 통장, 배우자 명의 통장 개설은 허용하지만, 이외는 모두 원칙적 ‘위반’이다. 또 차명거래 정보에 대해선 관련 정보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통보 되도록 했다. 이 법안이 적용 되면 적어도 국내에서 이뤄지는 차명계좌는 ‘예외적으로 허용’된 것이거나 금융당국(FIU)의 감시망에 포착된 두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가 된다. 민 의원실 관계자는 “원형감옥(파놉티콘)이 법안의 모형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 관리·감독 문제가 불거진다. 휴면계좌 등까지 포함하면 수억 개를 훌쩍 넘을 국내 계좌에 대한 관리·감독을 FIU가 모두 담당할 수 있느냐다. 게다가 하나의 통장에 보관된 돈을 연계해 사용하는 ‘연결계좌’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당국이 해야 하는 감독은 거의 무한대로 확장된다. FIU의 전체 인원은 70여명 안팎이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차명거래 전담팀이 운영되지 않는다면 관리 감독이 불가능하다. 인원 보강 등과 발맞춘 단계적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조만간 대표발의할 법 개정안은 불법 차명이 적발될 경우 처벌조항을 5년 이하의 징역(현행 과태료 500만원)으로 대폭 강화한 것을 핵심으로 한다.

금융실명제 강화 논의가 국회에서 이뤄지는 큰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수 확대 방안인 ‘지하경제 양성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현대경제연구원)는 대략 GDP 대비 20%(290조) 가량인데, 이는 OECD 평균(13%)보다 한참이나 높은 수치다. 이를 양성화할 경우 기업 세무조사 강화, 과태료 목표 상향 등 ‘서민 쥐어짜기’ 필요도 상당부분 해소된다고 설명한다.

반면 전면적인 차명거래 원천 금지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하경제’가 더 깊은 곳으로 숨을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줄어들자 당장 5만원권의 화폐회수율이 2012년(61.7%) 대비 올해(52.3%) 큰 폭으로 떨어졌다. 세무당국에 포착되지 않는 현금거래 경제규모가 커진 셈이다. 소득공제 혜택이 축소된 데다 금융실명제까지 전면 시행되면 ‘음성화’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이란 논리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1993년 8월 시장에 큰 충격을 줬던 ‘금융실명제’ 시행 때도 ‘반대 논거’로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실측으론 지하경제 규모가 더 커졌다고는 증명된 바는 없다. 법 시행 직전 달인 1993년 7월 은행에 예금된 총액은 98조원에서, 같은해 12월에는 105조원으로 늘어났다. 금융실명제 시행으로 ‘현금인출’이 줄을 이을 것이란 우려는 다만의 기우에 그쳤다는 주장이다. 민 의원실 관계자는 “화폐퇴장론은 실측으로 보면 거짓이었다. 지하경제가 커질 것이란 우려도 다만의 기우”고 말했다.



홍석희기자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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