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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광화문 빅이슈 판매원, “비비큐. 비비큐 사세요~”라고 외치는 이유는?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비비큐. 비비큐 사세요~”

중국발 미세먼지가 자욱했던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역 6번 출구 뒤편.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 신준철(43) 씨는 양손에 잡지를 들고 자동차 와이퍼처럼 팔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탓에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그는 빅이슈를 자꾸만 “비비큐”라고 불렀습니다.

동장군이 성큼 다가왔지만 신 씨에겐 별다른 월동준비가 없다고 합니다. 내복을 하나 더 껴입거나 6번 출구 계단 밑에 내려가 잠시 피신하는 것 정도입니다. 시민들이 따뜻한 음료를 건넬 때도 있는데, 이날도 그의 짐 옆에 베지밀 병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지하철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 빅이슈 판매하는 신준철 씨

빅이슈 판매원은 주말에 쉬어도 됩니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이곳에 매일 오후 12시 30분에 출근해 하루 7시간씩 일을 합니다. 그는 “특히 이번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는 대목이라 쉴 수가 없다”고 귀뜸했습니다.

광화문 인근에서는 촛불 시위가 있는 날에도 빅이슈가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시민은 물론 경찰들까지 빅이슈를 사간다고 합니다.

신 씨는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 구로구에서 노숙생활을 했습니다. 알코올중독자모임에서 알게 된 빅이슈 판매는 2010년 4월 당산역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다. 벌써 4년차 베테랑입니다. 하얀 입김을 뿜으며 신 씨는 “빅판 중에서도 내가 에이스”라고 자랑했습니다.

반면, 이기성(53) 씨는 3개월 된 초보입니다. 지난 4일 이 씨는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 출구 앞에서 분주한 시민들에게 일일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서있으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나온 이 씨는 4시쯤 만난 기자가 구매한 2부를 제외하곤 1부밖에 못 판 상태였습니다. 낮보다 퇴근 시간에 조금 더 팔리기 때문에 보통 밤 9시까지 퇴근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빅판은 잡지를 빨리 팔아야 빨리 퇴근할 수 있습니다.

영등포구 소재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그는 “노숙했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매일 새기고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된 대중문화잡지입니다. 홈리스에게만 판매권을 줘 자립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국에는 2010년 7월 창간됐다. 올 4월부터 격주간(1일ㆍ15일)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역 50여곳에서 판매되는 빅이슈의 판매원은 모두 50명. 한 달에 12명 정도가 빅판에 도전하고 이 중 30%가 정식 빅판이 됩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을 종합하면 50명 정도가 꾸준히 유지된다고 합니다.

빅판의 자격 조건은 ‘노숙 경험이 있고 자립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한정됩니다. 한국에서 빅이슈는 호당 대략 1만부씩, 한달에 2만부가 팔립니다. 영국의 경우 한달에 60만부가 나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많이 팔리는 수준은 아니라고 합니다.

저조한 판매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중 하나는 편견입니다. 신은경 빅이슈코리아 판매국 팀장은 “영국에서 홈리스(homeless)는 주거가 일정치 않은 취약계층을 일컫는데, 우리는 이런 홈리스의 1% 비중밖에 안 되는 노숙자로만 빅판을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게으른 노숙자’라는 색안경 때문에 구매를 꺼리는 측면이 있다는 뜻입니다. 신 팀장은 “시혜와 동정이 아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란 시선으로 아저씨들을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빅판의 자립 시스템은 매우 체계적입니다. 맨 처음, 회사에서 무료로 주는 빅이슈 10부를 판매해 번 돈 5만원 가운데 생활비를 뺀 나머지로 빅이슈를 원가(2500원) 구매합니다.

신준철 씨 빅이슈코리아 촬영 동영상 캡쳐

이를 5000원에 팔면 빅판은 한 부에 2500원씩 벌게 됩니다. 2주 뒤 회사가 빅판에게 한달치 고시원비 24만원을 지원하고, 이후부터 빅판 스스로 월세를 내며 생활을 꾸려갑니다. 6개월 후 순번에 따라 ‘빅판의 꿈’인 임대주택에 입주할 자격을 얻습니다.

임대주택은 고시원보다 월세가 싼(약 15만원) 원룸. 이렇게 자립에 성공한 빅판은 현재까지 30명입니다.

우리가 지하철역에서 마주치는 빅판은 이런 엄격한 시스템을 밟아나가는 당당한 직업인이라는 게 빅이슈코리아 측 설명입니다.

광화문 빅판 신준철 씨도 1년만인 2011년 4월 서울 강서구 까치산역의 월세 14만원짜리 15평 원룸에 살게 됐습니다. 그는 “팔지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빅판들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빅이슈 관계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매서운 겨울 날씨입니다. 빅이슈코리아 직원 이선미 씨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것조차 꺼려지는 겨울인데 7시간씩 밖에서 일하는 빅판 분들이 걱정된다”고 털어놨습니다.

빅판들이 하루에 판매하는 빅이슈는 평균 15부. 하루 3만7500원을 손에 쥡니다. 이 돈으로 고시원비, 식비, 생활비를 충당하고 저축까지 해야 합니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올 겨울에는 한파가 자주 몰아쳐 다른 해보다 훨씬 더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만큼은 기상청 예보가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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