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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대통령 해외순방때 머무는 숙소는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정상회담은 외교 행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대통령이 묵는 숙소도 중요한 의전의 한 요소로 그 의미를 살펴보면 외교의 재미를 느낄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당시 묵었던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는 외국정상을 위한 공식 영빈관으로,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묵은 바 있다.

블레어 하우스는 워싱턴 DC의 펜실베니아 애비뉴 1651번지에서 1653번지까지 걸쳐 있는 4채 규모의 타운하우스로 1600번지인 백악관과는 지근 거리에 있다. 그 만큼 이곳에 묵는다는 것은 백악관이 최선의 편의와 경호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당초 이 건물은 1824년 첫 공중위생국 장관이었던 조지프 로벨의 사저로 세워져 1836년에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자문역이었던 프란시스 프레스턴 블레어에게 팔리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이후 1942년 미국 정부가 사들이면서 블레어 하우스는 미국 대통령이 맞이하는 외국 정상들을 위한 영빈관이 됐다.

블레어 하우스는 몇몇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식을 앞두고 하룻밤을 묵는 숙소로도 활용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레이건, 포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 당시 문상객을 맞을 수 있도록 낸시 레이건과 베티 포드 여사에게 이 시설을 제공하기도 했다.

백악관 보수공사가 이뤄진 해리 투르먼 전 대통령 재임시절 블레어 하우스는 대통령 거처로 활용된 적도 있다. 단순한 정부 소유 호텔이 아닌 역사적 장소 중 하나인 것.

중국이 국빈방문한 정상에게 제공하는 영빈관은 ‘댜오위타이(釣魚臺)’다. ‘조어대’라는 명칭은 중국 금나라 장종 황제가 이곳에서 낚시를 즐긴 데서 유래했으며 명나라 영락황제 이후 황제들과 황실 친가들의 별장 역할을 해왔다.

800년 역사를 가진 댜오위타이는 청나라 건륭황제 때 여러 건물들이 증축되는 등 현재의 골격을 이어왔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58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할 외국 정상들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 건물을 개조해 국빈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외교부 산하 기업 형태인 댜오위타이는 중국 정부의 국빈으로 초대받은 외국 국가원수는 물론 장관급 관리, 정계 인사, 주요 기업인들의 전용 숙소로 사용된다. 지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을 방문한 우리 전ㆍ현직 대통령들도 예외없이 이곳에 묵었다.

서양 풍속을 존중해 숫자 1과 13은 사용하지 않고 2호각부터 12호각까지, 14호각부터 18호각까지 숫자로 각 동의 이름을 표기했다.

각 동마다 객실, 연회실, 접견실을 갖추고 있어 총 객실 수는 200개, 수용가능 인원은 500여명에 이른다. 이중 우리 대통령들이 단골로 묵은 곳은 ‘18호각’이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지난 6월 중국을 국빈방문한 박근혜 대통령도 이곳에 묵었다.

영국 왕실은 왕궁인 버킹엄 궁 내 ‘벨지언 스위트’(Belgian Suite)를 국빈방문한 노무현 전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어줬다.

벨지언 스위트가 있는 궁내 건물에 여왕의 숙소도 있는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을 직접 안내하고 소개하며 최고의 예우를 갖췄다.

특히 이 벨지언 스위트는 여왕의 3남1녀 중 차남과 삼남인 앤드루 왕자(요크 공작)와 에드워드 왕자(웨섹스 백작)가 태어난 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왕실은 대통령 본인 뿐 아니라 장관급 공식 후행원과 의전장, 보좌진도 함께 묵도록 배려한다.

한 핏줄이면서도 가까이 하기 힘든 북한은 어떨까?

북한의 영빈관인 백화원초대소는 지난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머물렀던 적이 있어 우리에게 낮설지 않은 곳이다. 평양시 대성구역 임흥동에 위치한 백화원초대소는 지난 83년 문을 열었다.

이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2007년 정상회담 차 방북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이곳에 묵게 해 국가 정상 급 예우를 갖췄다.

3개의 건물이 연결된 본관 앞에는 여러 개의 분수대가 설치된 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채의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곳곳의 화단에 여러종류의 꽃이 피어있어 `백화원‘이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이곳 백화원은 단순한 숙소일 뿐만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과 우리 대통령이 남북 간 현안과 통일의 방향을 논하는 협상장으로도 활용됐다.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 전 위원장이 3시간50분간 단독 마라톤 회담 끝에 역사적인 6.15 공동 선언을 이끌어 냈다.

2007년 김 전 위원장은 서해평화협력지대 등 남북현안에 대해 “이곳에 하루 더 묵으며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자”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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