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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90년대 아이콘 소설가 백민석이 달라졌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괜찮은 대표작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10년 전 자발성 절필 이후 ‘혀끝의 남자’(문학과지성사)로 돌아온 소설가 백민석(42)의 귀환 이유다.

분노와 폭력의 언어로 1990년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렸던 그는 절필 전 10년 동안 2권의 소설집과 6편의 장편소설을 썼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했다.

우울증으로 망가져 가는 몸과 작품을 보고 나를 살리는 삶을 살겠다고 잠적해버렸던 그는 소설과 영 멀어졌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10년을 살았다. 예정에 없이 우연히 이뤄진 소설로의 귀환이지만 소설은 그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번 소설집 ‘혀끝의 남자’는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9편의 소설 가운데 신작은 ‘혀끝의 남자’와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 2편이고, 나머지 7편의 작품은 새로 고쳐 쓴 작품이다. 10년 전 ‘망가진’ 작품을 대폭 손질해 새것이나 다름없다.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이 그의 절필에 대한 변명, 작가로서 다시 살기의 다짐이라면 ‘혀끝의 남자’는 2기 백민석의 첫 소설로 불릴 만하다.

사실 표제작 ‘혀끝의 남자‘는 15년 전 인도 여행의 경험을 끄집어낸 것이다.

“나는 혀끝의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머리에 불을 이고 혀끝을 걷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그러니 나는 혀끝의 신을 본 것일 수도 있다. 남자도 여자도 인간도 아니라면 방금 내 혀끝에서 태어난 신일 수도 있다. 일억이나 되는 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오분 전에 내가 새로 구워낸 신일 수도 있다. 신이라면 나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내 혀끝이 종교의 발상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로 맺는다.

‘혀끝의 남자를 보았다’는 시작과 맺음은 단호하다. 혀끝의 남자와 신 사이에 백민석이 앞으로 그려나갈 세계의 단초가 있는 듯도 하다.

시작과 끝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인도에서의 여행담이다. 화자가 만난 인도의 첫인상은 뼈마디가 다 꺾여서 구겨진 소년이다. “한쪽 다리는 땅을 짚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뒤로 꺾여서 두 다리가 직각을 이루고 있고 등은 척추가 부러진 사람처럼 굽었는데 팔 하나는 휘어져 하늘을 향해 똑바로 뻗쳐 있었다.”(11쪽)

소년의 기이한 모습은 화자에게 알 수 없는 거대한 힘과 장난감처럼 쉽게 뒤틀리는 존재의 무력을 시각에 남긴다.

화자는 갠지스강에서 보트놀이를 하며 인공 건축물로 화려한 강 왼쪽과 모래벌판뿐인 강 오른쪽의 대비에 눈길을 돌린다. 한쪽은 갠지스강의 침식 작용을 아무 저항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인 무채색의 벌판이, 다른 한편은 황금색과 원색 도료들의 화려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대비와 불균형 속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왜 하필 이런 곳을 성지로 삼았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소설 속 화자는 냉소적이기도 하고 무덤덤해 보인다.

주인공의 표정을 이모티콘으로 그리자면, 백민석이 소설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에서 묘사한 눈과 입의 기본형에 속할 형이다. 그런 화자가 웃을 때가 있다. 대마초를 넣은 담배, 해시시를 말아 피우고서다.

여정에서 그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나지만 그들을 만났다기보다 해시시를 만났다는 게 옳다. “이제 턱뼈와 얼굴 가죽 전부가, 뺨 이마 입술 턱살이 제멋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웃고 있었다.”(33쪽)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신을 찾는 칼리사원, 사이클릭샤를 타고 한 시간이나 이어지던 빈민가의 모습은 구겨진 소년의 모습과 함께 그에게 병든 기억으로 남는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오래 품어온 주제에 한발 다가간 듯하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줄곧 생각해온 것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왜 종교에 끌리느냐’였다”고 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그 화두를 본격적으로 붙잡은 것 같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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