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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정구호 의상 · 음악 총괄, 전통무용가 윤성주 감독과 내달 ‘묵향 ’ 공연… ‘사군자’소재 선비정신 수묵화처럼 담아내
정구호(51) 연출작, 국립무용단의 창작무용 ‘묵향(墨香)’의 다음달 공연을 20여일 앞두고 패션계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10년간 몸담았던 제일모직을 15일 퇴사한 것. 의류 브랜드 ‘구호’와 정구호 전무가 워낙 제일모직 패션 부문의 아이콘처럼 여겨져온 까닭에 패션계는 이 소식에 깜짝 놀랐다.

정 전무와 국립무용단 윤성주(56) 예술감독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나 ‘묵향’에 관해 얘기를 들은 직후 터져나온 소식이었다. 사건의 주인공은 해외로 며칠간 휴식을 떠났고, 이후 다시 전화로 만난 정 전무, 아니 정 연출은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계획을 말했다. 그는 “직접 의류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은 없다. 패션 쪽에선 당분간 계획된 게 없다”면서 “공연 분야에선 내년 9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1월에 LG아트센터에서 각각 신작 무용을 연출하며 6월에 국립무용단과 ‘단’ 재공연도 한다”며 당분간 공연예술에 집중할 뜻을 내비쳤다.

‘묵향’은 ‘단’에 이어 정구호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안무가 안성수와 호흡을 맞췄던 국립발레단 ‘포이즈’, ‘단’과 다르게 이번에는 전통 무용가 윤성주 감독이 파트너다.

정 연출은 “공연은 11번째 작업인 것 같다. 그동안 발레를 기초로 모던 발레, 현대무용이었는데 한국 무용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부터 한국 전통 무용에 관심이 많아서 윤 감독께 한 번 해보자고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현대와 전통의 각 끝에 선 두 고수가 만났다. 패션, 가구, 조명, 영화의상,무용 연출에서 미니멀리즘의 대가임을 입증한 정구호(오른쪽)와 1979년부터 15년 동안 국립무용단 무용수로 활약하고 중요무형문화제 제97호 살풀이춤, 제1호 종묘제례악(일무) 이수자 윤성주의 만남이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정 연출은 의상, 음악, 무대 디자인 등을 총괄한다. ‘묵향’은 매, 난, 국, 죽의 사군자를 소재로 정갈한 선비 정신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아낸 담백한 작품이다. 한국무용가 고(故) 최현의 유작 ‘군자무’를 윤 감독이 재창작했다. 정 연출의 모던하고 감각적인 의상과 무대, 조명이야 이미 ‘포이즈’ ‘단’을 통해서 정평이 났고, 이번 ‘묵향’의 중심이자 새로운 관전 포인트는 춤이다.

윤 감독은 “그동안 무대, 안무, 연출을 한꺼번에 다 했다가 이번에 연출을 다른 분과 처음 작업한다. 이번에는 오로지 춤에만 집중하게 됐다. 그러니 고민이 더 커졌다. ‘이제 뭐지?’할까봐 책임감이 크다. 잘못되면 망가지니까”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윤 감독은 “진짜 우리의 춤사위를 보여주는데, 오히려 그게 더 모던해 보일 수 있는 공연이다”며 “무용단원들도 현대적인 창작무용에 익숙해 있다가 정갈하고 우아하고 평소 잘 쓰지 않는 걸 짚기 때문에 어려워하면서도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단원들을 치켜세웠다.

무대에 서는 27명의 단원은 호흡, 발디딤, 손놀림을 한껏 죽이고 절제하면서 춤사위를 이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한복에 가려지는 버선발의 디딤새가 최대 난제다. “안무자 입장에선 치마 속에서 뭘 보여줘야 하나” 고민이 많다는 윤 감독은 “부푼 치마 속에서 어떻게 발을 디디고, 버선코를 치맛자락 밖으로 설핏 보이게 하는지 등 옷 속에서 풀어가는 게 숙제”라고 했다. 정 연출은 “속으로 누르고 절제하는 게 우리나라 기본 정신인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윤 감독은 “한국 무용은 음악을 갖고 놀아야 한다. 무용수가 마음대로 호흡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고, 음악과 동화되어 움직임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려운 기술이다. 음악과 춤이 맞으면 무용수는 속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럴 땐 속으로 ‘얼쑤!’한다”고 말했다.

공연은 각 장이 10여분씩 모두 6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 서무는 남자 무용수 12명의 선비춤이다. 거문고 중모리에 콘트라베이스의 중저음이 깔린다. 2장은 봄, 매화의 장으로 깨끗한 정가 음악을 배경으로 여성 무용수의 고고한 춤이 펼쳐진다. 3장 난초는 가야금과 거문고 4중 연주로 중중모리의 하모니를 따라 난초로 상징한 양반 자태를 선보인다. 4장 국화에선 꿋꿋하고 품위 있는 여성 군무가 진양조와 해금산조 선율로 중후하게 펼쳐진다. 5장 오죽은 선비의 기개를 보여준다. 대나무 장대를 들고 추는 남성 군무가 대금 산조의 자진모리와 함께 어우러진다. 6장 종무는 가야금, 바이올린의 협주로, 군무를 통해 사계절 자연의 조화와 군자정신을 표현한다.

정 연출은 “단편소설이 모인 장편처럼, 느낌, 템포가 다르고 기승전결이 느껴질 것이다”며 “90% 이상 전통의 범위를 유지하지만 한국적인 느낌을 다 묶어 놨을 때 현대적인 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의상은 소색(염색하기 전 무명의 고유색), 먹색이 주된 색깔이며 포인트로 꽃분홍, 녹색, 노란색이 들어간다. 정 연출은 “무대도 미니멀하고 여태껏 보지 못한 걸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나는 모든 것을 이미지화해 상상할 수 있는 실제 결과와 10% 편차다. 이번에도 충분히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자신했다.

윤 감독은 “단원들은 우리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춰보고, 관객도 우리 음악으로도 저렇게 요리할 수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공연은 12월 6일부터 8일까지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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