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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내 의견 수용않으면 무조건 ‘不通’ 비난…울화통 터지는 민의의 전당
말하는 쪽만 있고 듣는 쪽은 없다…대한민국의 고질병 ‘정치不通’
소통한다며 한 달 수십건 공청회·청문회…민심 듣겠다며 SNS까지 뛰어들지만 현실은 ‘제자리 걸음’

정쟁에 성난 국민들에 내놓는 반성문은 늘 “소통에 노력하겠다”…상대 인정하는 자세가 소통 ‘첫걸음’




정치권에서 ‘통(通)’은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 자주 언급되는 말 중 하나다. 야당의 요구를 거부한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불통’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강경 대응만 거듭하는 야당도 ‘불통’으로 비난받곤 한다. 비슷한 뜻의 ‘귀머거리’라는 우리말이 조금은 상스럽게 느껴져서 그런지, 정치인들은 한자를 조합한 ‘불통’을 즐겨쓴다. 그만큼 정치권에서 ‘소통(通)’은 아직도 요원한 모습이란 의미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서해북방한계선(NLL),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국가기록원 미이관,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등으로 정쟁을 거듭하고 있는 2013년 11월 여의도 국회에는 어김없이 ‘불통’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해준다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며 나름 소통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것은 “문제의식도 시정의지도 부족한 불통의 연설”이라는 평가뿐이었다.

불통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이 꼽힌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함께 쇠고기 수입 확대를 약속했다. 당시 정부는 ‘국내 한우 농가의 반발’을 걱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광우병을 소재로 한 야권의 촛불 시위였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당시를 회상하며 “국민과 완벽하게 소통해야 하는데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충분하지 못했던 대국민 의사설명, 그리고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불통 정치에 대한 반성이다.

당시 불통은 시위 주도 세력에도 존재했다. 뒤늦게나마 주무부처 장관이 설명을 하고 또 토론을 하겠다며 시위대를 찾아갔지만, 돌아온 것은 야유와 문전박대뿐이였다. 정부도 시위대도 모두 ‘내 주장’만 있을 뿐, 반대 측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정치인들, 또 각 정당들은 항상 ‘소통’하고 있고, 또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국회에서는 한 달에도 수십건의 공청회, 청문회, 간담회가 열린다. 여기에는 특정 이슈나 법안에 찬성, 반대하는 전문가나 관계자들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다. 의원들의 홈페이지나 트위터 역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찬반 의견으로 도배가 되곤 한다. 최근 ‘게임중독법’이 대표적인 예다. 이 법을 발의한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의 트위터는 반대하는 게임 이용자들의 항의글이 십만건 이상 올라왔고, 신 의원도 나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들을 설득시키고자 노력했다.

한때 정치권을 달궜던 ‘트위터 열풍’도 소통의 의지가 담겨있다. 심지어 전문 보좌관까지 지정하거나, 본인 스스로가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글을 올리는 ‘열혈 국회의원’도 나왔다. “또 다른 일방적 주장의 다른 무대”라는 혹평도 있지만, 트위터는 이제 ‘소통’을 위한 정치인들의 필수품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정치를 바라보는 유권자, 그리고 정치인들 스스로에 대한 평가 역시 아직은 ‘불통’이 우세하다. 인사파동이나 정책혼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쟁이 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은 “앞으로는 국민과 소통에 좀 더 노력하겠다”고 반성문을 쓴다. ‘불통’은 특정 대통령, 정당의 문제가 아닌 정치권의 고질병임을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불통’ 불치병의 해법으로 권력구조 개편, 양당 구조 혁파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름은 다르지만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그리고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와 정치권이 나와 다른 상대편의 마음까지 좀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지금의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게 이들 처방전의 공통점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소통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냐”며 “상대방의 의견, 심지어 당 내 다른 목소리에까지 귀를 막고 자기 할 말만 해서는 ‘불통’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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