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일제 강점기 시기 벌어진 강제동원 및 학살 피해자 명부가 발견되면서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배상 문제와 더불어 과거사 배상 문제가 새로운 한일 관계에 핵심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도쿄에 위치한 주일 대사관 이전 도중 서고에서 수십권에 달하는 일제 강점기 피해 관련 문서가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현재 이들 자료를 8월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으로 보내 정확한 규모와 내용을 파악 중에 있다.
1950년대 초반 이승만 정부에 의해 조사 및 작성돼 주일 대사관으로 보내진 이들 문서에는 1919년 3.1 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숨지거나 투옥된 인사, 1923년 관동대지진당시 학살된 재일 조선인과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용ㆍ징병된 인원에 대해 면 단위 인원 통계와 피해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발견된 문서는 우리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이전에도 식민지 점령에 의한 구체적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배상을 요구할 뜻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관동(關東) 대지진 관련 기록. 1923년 9월1일 관동지방에 발생한 규모 7.9의 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유언비어가 떠돌면서 6000여명 정도가 학살됐다. 일본 군대와 경찰이 자경단이라는 명목하에 일본인들을 조직해 조선인 사냥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일본 정부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부인해 왔다.
개별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묘사한 조사내용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분석 결과에 따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증명할 증거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미쯔비시 중공업, 신일본제철 등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기업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강요받았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에 나선 데 대해 일본 정ㆍ재계가 “모든 법적책임은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며 반발하는 가운데 정확한 강제 징용ㆍ징병 규모와 참혹상을 확인해 줄지도 관심사항이다.
일본 정부는 유수(留守)명부, 피징용사망자 연명부, 해군 군인군속 명부 등을 넘겨줬지만 이들 자료에서 밝히고 있는 피해 규모는 일본 후생성이 작성한 ‘조선경제 통계요람’에서 밝힌 104만∼116만명 정도에도 크게 못 미친다.
우리 정부는 “국제법상 인도에 반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정확한 피해자 규모가 밝혀지면 이들 기업의 책임 범위와 강제 동원 과정에서 당시 일본 정부의 개입 정도를 밝힐 수 있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록원은 관련 문서 분석 내용을 이번주 중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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