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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박영상> 품위를 갖춘 ‘지공거사’를 위해
몇 나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서울지하철은 다른 나라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철도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일본의 지하철에 버금간다. 우선 깨끗하고 쾌적하다. 또 대부분 수도권의 역사에는 안전문이 설치돼 있고, 엘리베이터ㆍ에스컬레이터 등의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시간도 잘 지킨다.

게다가 노선도 수도권뿐만 아니라 경기도, 충청도까지 뻗어 있어서 편리하기 짝이 없다. 서울의 교통혼잡도가 심하다고는 하지만 지하철만 잘 이용하면 큰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무임승차의 혜택이 주어진다는 것이 큰 매력이고, 자랑이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이렇게 통 크게 노인들은 ‘공짜’로 태워주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노인들에게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이 주어진 때문인지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의 숫자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지하철 이용 노인 수가 많아지면서 볼썽사나운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자리 양보를 강요하다가 말다툼이 벌어지고, 젊은 사람을 훈계(?)하다가 시비가 일어나고, 앉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허둥대는 등 역겨운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지공거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들이 조금만 조심하면 우리나라의 지하철 풍경은 훨씬 좋아질 텐데 하는 마음으로 몇 마디 던진다.

먼저 붐비는 시간을 피하자. 출퇴근시간대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지하철 이용을 자제했으면 어떨까?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주말에도 멀리 가는 노선을 가급적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온양 춘천 용문산 그리고 소요산 등으로 가는 지하철은 주중에 이용하고 주말엔 쉼이 절실한 젊은 세대에게 내어 주자는 것이다. 산이나 온천 그리고 행락지로 향하는 전철을 ‘지공거사’들이 주말에 많이 이용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사실이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하철 이용시간이 한 시간 남짓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서 있을 수 있다. 타자마자 경로석으로 뛰어간다든지, 젊은 사람 앞에 서서 양보를 강요하는 모습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또 엘리베이터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모습도 민망스럽다. 일부러 걷기운동도 하는데 조금 서 있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또 편의시설은 불편한 사람을 위한 것이지, 성한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어르신’의 품격을 스스로 지키자. 큰소리로 전화를 받거나 낮술 마시고 냄새를 풍기거나 ‘양반다리’로 옆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일 등은 공공장소에서 상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객차 안에 떨어진 휴지를 줍거나 열차 칸 사이에 설치된 문을 닫는 등 어린이나 젊은이들이 어질러놓은 것을 정리정돈한다면 지하철 승차 분위기는 한결 좋아질 것이다.

버릇없는 젊은이, 공중도덕 실종 등을 말하기 전에 품격을 갖춘 ‘지공거사’들이 대거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인품과 경륜이 묻어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지, 대접받기 위한 면허증은 아니다. 품위를 갖춘 ‘지공거사’들을 자주, 그리고 많이 보고 싶다.

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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