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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여성急求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기업 평가 시즌이다. 작년 말ㆍ올해 초에 세운 사업목표 달성 여부, 주가 흐름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 최고경영자(CEO)ㆍ임원 승진자를 추려야 하는 때다. 각 기업 인사팀이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 흥미로운 얘기가 들린다. 열 손가락 안에 드는 A그룹 오너의 일화다. 촛점은 여성이다.

얼마 전 이 그룹의 한 계열사가 인사를 했는데 오너가 내용을 보고받고 호되게 나무랐다고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여성 임원 승진자가 하나도 없냐”는 게 골자다. 최근 몇 년간 공공 분야ㆍ기업을 불문하고 사회 전반에 우먼파워가 득세한 점을 생각하면 추상같은 지적이다.

다만, ‘지금이 어느 때냐’고 일갈한 이 오너의 타이밍은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지금’은 여성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겠냐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윗선이 나서니 아랫단은 더 부산하다. 여성 인력을 끌어 들이려는 헤드헌터의 물밑작업도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꽤 규모가 있는 식품 기업은 최근 헤드헌터를 통해 여성 부장ㆍ차장급을 영입하려고 이곳 저곳에 의향을 묻고 있다는 소리도 있다.

여성 대통령 시대이니 기업도 여성임원이 많아져야 한다는 진단의 유래는 어디일까. 여성 대통령이 대기업 오너를 모아 앉혀 놓고 여성 임원의 숫자를 논할리 만무하다. 알아서 코드를 맞춰야 여성 대통령에게 면이 선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론이 무리는 아니다. 지난 정권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면 CEO 아니라 CEO 할아버지라도 버틸 수 없다는 시그널이 현실화하는 요즘이니 밉보일 일을 만들 ‘강심장’은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가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굳이 ‘때’와 결부시키지 않아도 여성 인력은 곳곳에서 실력을 뽐내고 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꼼꼼함으로 여러 조직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중이다.

물론 절대적인 여성 임원의 숫자는 남성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건 남녀 출생 성비에서 남아가 여아를 크게 앞섰던 개발연대의 시대상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샐러리맨의 별’이라는 임원 달기는 남성에게도 숨이 턱 막히는 난제여서 기업의 임원 인사에 관한 한 남녀차별은 용도폐기된 ‘클리셰’에 가깝다. 혹여 여성 대통령이 집권했다는 이유로 객관적인 성적에서 밀리는 데도 여성을 임원 승진자 명단에 밀어 넣는 기업이 있을까 우려된다. ‘신상필벌’이라는 기업 인사의 대원칙은 특정 시즌의 이벤트가 돼선 안되기 때문이다. 작위(作爲)는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대중문화계에서 ‘군통령(군대에서 막강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뜻)’으로 군림하는 한 여성 아이돌 그룹은 이런 노래를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뭐가 그렇게 심각해 왜 안돼/여자가 먼저 키스하면 잡혀가는 건가….’ 제목은 ‘여자 대통령’이다. 지난 6월에 나온 곡으로, 마케팅 측면에서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노랫말을 보면 어안이 벙벙할 사람도 있고 크게 공감할 부류도 있을 것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이미 이런 세태 속에 살고 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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