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규앨범‘ 도착’낸 싱어송라이터 프롬
솔직한 내 이야기 닮은 가사몽환적 중저음 음색이 매력적
내년 2월 첫 단독콘서트도 열어
인디 포크는 싱어송라이터 계보에서 소외된 여성의 약진이 돋보이는 몇 안 되는 장르다.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은 포크라는 장르를 넘어 ‘홍대’라는 이름으로 퉁치는 인디 음악계의 클리셰(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만큼 클리셰를 향한 대중의 피로감도 커졌다. 이를 방증하듯 ‘홍대여신’은 이제 찬사보다 비아냥거림에 더 가까운 수식어다.
클리셰의 고집은 안전하나 진부하고, 탈피는 신선하나 위험하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변주다. 첫 정규 앨범 ‘도착(Arrival)’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프롬(Fromm)은 목소리에 감정을 과잉하는 대신 일상성을 유지하고, 음악을 세련시키기보다 거칠지만 포근한 원형질을 보존함으로써 클리셰의 색다른 변주를 시도해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프롬은 “데모를 녹음할 때 집 안에 편안히 누워 저렴한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좋았다”며 “날 것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한 곡당 최소 4~5번의 녹음을 반복하는 등 잘 빠진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작업보다 오히려 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고 전했다.
프롬은 지난 2011년 ‘쇼머스트 옴니버스’ 앨범에 ‘마중 가는 길’을 실으며 데뷔해 2012년 싱글 ‘사랑 아니었나’와 지난 5월 싱글 ‘너와 나의’를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또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헬로루키’로 선정되며 음악적 역량과 개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데뷔 전까지 프롬이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의 시간은 길었다.
프롬은 “22살 무렵 제대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향(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내게 현실의 벽은 높았다”며 “실용음악학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강의를 듣고 몇몇 밴드와 기획사를 전전하기도 했지만 모두 내가 꿈꿨던 것과 거리가 멀어 꽤 오랜 시간 방황했다”고 회상했다.
낯선 서울의 작은 방에서 적지 않은 계절을 흘려보내며 느낀 감정과 쌓인 경험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음악으로 완성돼 나갔다. 상경 후 가족과 나눈 전화 통화는 ‘도착’의 일기를 닮은 가사로, 의지와 상관없이 가슴 한복판에 슬그머니 박혀버린 누군가를 향한 복잡 미묘한 감정은 ‘마음셔틀금지’의 경쾌한 연주로, 표현하지 못한 오래 전 풋사랑은 ‘좋아해’의 뒤늦은 고백으로, 일상에 치여 홀로 힘겨웠던 밤은 ‘달, 말하다’의 서글픈 독백으로,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준 누군가의 위로는 ‘불꽃놀이’의 휘황한 소리의 풍경으로 거듭났다.
포크 여성 싱어송라이터에겐 흔치 않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프롬은 마치 말을 하는 듯한 힘을 뺀 보컬로 노래를 부르며 앨범에 확실한 개성을 부여한다. 유례를 찾기 힘든 파스텔 톤의 ‘빈티지’ 사운드는 앨범 전체에 몽환적이고도 아득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가사가 철저히 한글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국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이 공간감 때문이다. 삼성 ‘갤럭시’ 시리즈 광고 음악 프로듀서로 유명한 앤디 로젤룬드(Andi Roselund)가 공동 프로듀싱을 맡아 프롬의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들을 구체화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손담비와 애프터스쿨의 소속사인 플레디스가 제작비를 지원한 것도 이채롭다.
프롬은 “처음부터 목표한 사운드가 확실했기 때문에 의도대로 만들고자 끊임없이 엔지니어들을 귀찮게 하고 고집을 부렸다”며 “한때 디즈니 애니메이션 OST 같은 청아한 목소리를 동경했기 때문에 목소리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만만치 않은 시간을 헤쳐 오며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목소리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롬은 내년 2월 중순 서울 홍대 벨로주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벌일 예정이다. 프롬은 “이 앨범이 콘서트를 찾아올 관객들의 일상에 배경음악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MBC 예능 ‘무한도전’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방송에서 ‘유느님(유재석의 별명)’과 꼭 마주치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