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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으른 천재’ 허인회, “아직 우승은 내 것이 아니다”
“단독 2위가 목표입니다.”

호탕한 목소리로 내뱉은 목표는 우승도 아니고 ‘단독 2위’다. 이유를 묻자 “아직 우승컵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아서”란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고개를 더 갸웃하게 만든다.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들이 제일 부럽다. 연습할 수 있는 재능이 내겐 없다.”

‘게으른 천재’ ‘비운의 아마랭킹 1위’. 그닥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고 있는 허인회(26)다. 30일 서귀포 롯데스카이힐제주CC 힐·오션코스(파72·6983야드)에서 열린 남자프로골프(KPGA) 헤럴드 KYJ 투어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코스레코드인 7언더파를 기록하며 중간합계 8언더파 136타, 단독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2005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스카이힐제주오픈 4라운드에서 자신이 세운 코스레코드(5언더파 67타)를 8년 만에 깨뜨렸다. 재능 면에선 현역 선수 중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2008년 프로 첫해 우승 후 허인회의 이름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국가대표 동기인 이동환(26·CJ오쇼핑)과 김경태(27), 강성훈(25·이상 신한금융) 등이 맹렬하게 달려나갈 동안 그는 조금씩 잊혀졌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가 궁금했다.

헤럴드 KYJ 투어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2위를 한 허인회 선수가 3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제주=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신인 첫 해 우승, 사실 좀 만만해 보였다=처음엔 골프가 싫었다. 축구선수가 꿈인 그에게 아버지는 축구공 대신 골프채를 쥐어줬다. 엄한 집안 분위기에서 아버지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재능만큼은 출중했다. 서라벌고 시절부터 한국 남자골프를 쥐락펴락했다. 아마추어 대회선 23차례 우승했고 프로대회에 나가서도 곧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아마랭킹 1위였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진한 탓에 김경태, 강성훈, 김도훈(24) 등에 밀려 2006 도하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2년간 골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래 쉬었다가 다시 하니까 연습을 해도 잘 안되더라고요. 그때부터는 그냥 대회장에 나가 몇번 스윙하고 출전한 게 연습의 전부였어요. 일반 골프연습장에서 저를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연습을 안했는데도 우승은 금세 찾아왔다. 프로 데뷔 첫해인 2008년 필로스오픈에서 첫 우승. 프로 무대도 만만하게 보였다.

“게으른 천재라고 하는데 솔직히 골프에 대한 감이 좋긴 해요. 신인 때 첫승을 하면서 사실 좀 만만하게 본 것도 없지 않죠. 2승도 금방 올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대회장에서 하는 연습이 전부인 그에게 두번째 ‘행운’은 오지 않았다. 성적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다행히 그는 요행을 바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감이 좋은 것만 갖고는 우승할 수 없다. 그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연습 없이 우승하면 그것만큼 불공평한 게 어디있나”고 했다. 


▶우승? 좀더 연습하고 떳떳해질 때 욕심내겠다=허인회의 골프는 외모만큼이나 화려하다. 속된 말로 ‘지르는’ 스타일이다. 드라이버 평균비거리 7위(295.9야드)에 올라 있는 그는, 좁은 페어웨이로 악명높아 대부분 3번 우드나 아이언을 잡는 스카이힐CC 8번홀(파5)에서도 주저없이 드라이버를 잡고 휘둘렀다. 페어웨이에 안착하는 걸 보곤 거침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일부에선 ‘모 아니면 도’ 식이라고 고개를 내젓지만 그의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가 다시 ‘연습’이란 걸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습이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어머니에게 힘이 될 것같았다. 하지만 올해 코리안투어 7개 대회 출전해 컷통과는 4차례. 올해 상금랭킹은 55위(2951만원)다. 일본 투어와 병행했지만 그곳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은 내지 못했다.

허인회는 “열심히 연습을 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인 것같다. 인내력, 끈기, 노력…. 이런 재능이 내겐 없다”며 “아직은 우승이 목표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연습을 좀더 열심히 하면 내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때 가서 좀더 떳떳하게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다”고 했다.

제주=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헤럴드 KYJ 투어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2위를 한 허인회 선수가 3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힐ㆍ오션 코스(파72ㆍ7228야드) 9번홀에서 퍼팅라인을 살피고있다. [제주=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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