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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 ‘원조 친박 ’서청원의 귀환…朴정부 성공 버팀목 될까
화성갑 보선 압승 ‘화려한 컴백’…박근혜 대통령과 얽히고 설킨 ‘부채의식’ 향후 행보 주목
서청원이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부채의식’으로 얽히고설킨 그가, 박근혜정부의 ‘선봉장’ ‘호위무사’로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겠다는 각오다.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배려해준 새누리당의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되고, 박근혜정부의 성공에 힘을 보태는 데 정성을 다하겠다. 박근혜정부가 성공하도록 버팀목이 되고 울타리가 되겠다”는 그의 당선 첫 인사말이다.

정치인 서청원의 인생은 박근혜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11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서 의원은 문민정부 시절 정무1장관, 한나라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승승장구했다. 그가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다.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서 의원은 1998년 치러진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박 대통령을 공천했다. 박 대통령은 정계 입문부터 서 의원에게 큰 빚 하나를 진 셈이다.

반대로 서 의원 역시 박 대통령에 ‘일생일대’의 큰 빚을 지고 있다. 서 의원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진두지휘했던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하고 말았다. ‘차때기’와 ‘탄핵역풍’으로 당 자체가 무너질 위기였다. 서 의원의 정치생명 역시 백척간두에 놓였다. 이때 서 의원과 한나라당을 구한 것은 박 대통령이다. 총선을 앞두고 구원투수로 나선 박 대통령은 천막당사 배수진으로 127석 제1야당으로 한나라당을 구했다.

이후로 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다. 민주화 상징 상도동계 수장이라는 간판을 버렸다는 비판도 감수했다.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에서 서 의원은 MB 저격수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박 대통령의 경선 탈락, 그리고 본인의 18대 총선 공천 탈락이었다.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위기였다.

그러나 서 의원이 또 한 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박 대통령이었다. 당시 총선에서 서 의원은 ‘친박연대’를 구성했고, 결국 14석 원내 제3당이라는 의미있는 승리를 거뒀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을 살고 나오면서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고 한 서 의원, 그리고 2011년 서 의원이 이끄는 모임에 참석해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는 박 대통령의 화답은 정치 동반자이자 서로에게 ‘큰 빚을 진’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 의해 정치에 복권된 서 의원이 본격적으로 빚갚기에 나설 차례”라고 말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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