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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드 노라노전시...한국의 패션-문화-여성의 역사가 한눈에
한국의 코코샤넬, 한국에 ‘패션’이라는 단어를 들고 들어온 사람, 패션의 어머니, 한국 패션의 뿌리와 혈통… 디자이너 노라 노(노명자ㆍ85ㆍ사진)를 칭하는 말이다. 한국 패션의 살아있는 역사인 노라노의 삶과 패션문화의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신문박물관은 ‘노라노: 자료로 보는 노라노발(發) 기성복 패션의 역사’ 기획전을 오는 12월15일까지 1개월 보름여 동안 연다.

전시는 총 4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이너 노라 노’, ‘기성복 시대’ , ‘서양식 의생활 교양과 매너, 패션적 사고의 전달자’ , ‘수출경제 발전과 섬유산업’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 전시다. 노라 노가 개인 소장한 사진, 드로잉 자료, 의상, 해외 자료 등을 통해 구성 패션디자이너로서의 화려했던 개인 삶보다는 선구안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기성복 시대를 연 노라 노의 행보에 초점을 맞췄다.

1947년, 20세의 나이로 미국 유학을 떠난 노라 노는 1949년 명동에 의상실을 개업했다. 당시 양장이 어색했던 외교관 부인을 위해 한복 감각을 살려 제작한 파티형 드레스인 ‘아리랑 드레스’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63년에는 의상실을 운영하며 축적했던 고객들의 신체사이즈 통계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기성복을 제작했다. 


노라 노는 자신의 기성복에 대해 “여성들이 옷을 입고 자유롭게 활동하며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 주고 싶었다.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옷”이라고 밝혔다. 그가 런칭한 기성복은 한국에서 ‘소비자 여성대중’의 탄생을 이끌었다. 기성복 라인의 성공과 국내 섬유산업 진흥정책의 지원에 힘입어 노라 노는 1970년부터 4년간 파리 쁘레따뽀르떼 (Pret-a-Porterㆍ기성복 패션쇼)에 참가했다. 1974년엔 뉴욕 메이시스 (Macy’s) 백화점 등에 입점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윤복희, 엄앵란, 펄시스터즈, 최은희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노라 노의 의상을 입으며 1950~70년대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회에 발맞춰 10월 31일에는 다큐멘터리 ‘노라노’(감독 김선희)가 개봉했다. 김 감독은 “노라노에 관한 이야기이자 패션, 문화,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를 통해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시에선 다루고 있어 좀 더 풍성한 이야기가 있다”고 전시회를 찾은 소감을 밝혔다. 전시에는 드로잉 자료, 의상 이외에도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특히 1950년대 연재한 칼럼에서는 서양복식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 여성은 히프선을 보강하기 위해 거들을 입는 것이 좋겠다”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입장료는 2000원~3000원.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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