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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공 비행' 물가에 정부정책 딜레마
[헤럴드경제=하남현 기자] “고물가에는 물가를 낮추는 한 방향으로 대응하면 되지만 지금은 애매모호하다”

물가는 낮을수록 좋다는 것이 대개의 상식이다. 그런데 정부의 요즘 고민은 물가가 너무 낮다는데 있다. 시장에서 과일 몇 개만 집으면 금새 지갑이 텅텅비는데다 택시비 등 공공요금도 치솟아 ‘못살겠다’고 아우성인 서민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얘기다. 하지만 수치상으로만 보면 저물가 상황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지난 1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8%로 집계됐다. 1999년 9월(0.8%)이후 14년만에 0%대 상승률이다. 게다가 최근의 원화 강세는 저물가를 더욱 부추긴다.

▶정부, 물가 끌어올리기 나서= 저물가 여파로 당장 정부의 일부 정책이 수정되고 있다. 2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당초 10월 내놓기로 했던 ‘공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 발표 시기를 미루기로 했다. 지난 5월과 7월에 각각 발표했던 농산물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대책에 이은 공산물 유통구조 개선안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물가가 이미 내려갈데로 내려간 상황에서 물가 하락을 유발하는 대책을 내놓을 시기는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오히려 정부는 농ㆍ수산물 물가 높이기에 나섰다. 해양수산부 등은 일본 원전오염 여파에 따른 소비 부진으로 수산물 가격이 폭락하자 소비촉진 방침을 마련했다 또 배추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에 대처하기 위해 출하 예정인 가을배추 3만t을 폐기시키기로 했다.

체감물가가 높은데도 정부가 나서서 물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정부의 물가 정상화는 세수 확보 차원에서도 시급하다. 세수 증대 노력에 저물가는 ‘독(毒)’이다. 대개 세수는 물가 상승률과 경제 성장률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 가운데 저물가까지 지속되 세수 확보가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물가 당분간 지속= 국내 소비자물가의 저공비행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7월) 연 1.7%에서 연 1.2%로 무려 0.5%포인트나 낮췄다. 당초 정부와 한국은행은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가 오를 것으로 전망했으나 예측이 빗나갔다.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생산자물가의 낙폭도 저물가 기조 유지를 점치게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 떨어졌다. 지난해 10월 0.5% 하락한 이래 12개월 연속 내림세다. 낙폭도 올해 7월(-1.0%), 8월(-1.3%) 등 두 달 연속 확대했다. 생산자물가가 이렇게 장기간 떨어진 것은 2001년 7월~2002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내년에도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2.5~3.5%) 기준선을 하회하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에는 물가 하락을 주도하는 공급측면 요소가 사라질 것”이라며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가운데 이것이 소비 등 수요 증대로 이어질지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저물가 행진이 계속되면서 일본식 ‘디플레이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김영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경제가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정책당국은 내수회복을 가로막는 가계부채와 설비투자 부진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총수요 회복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airins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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