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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100억원대 초호화 빌라의 눈물
[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신성한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靈龜飮水)의 길지(吉地)”

서울 용산구 한남동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수식어입니다. 남산의 맥(脈)과 한강이 만나 땅의 기운을 응집한 곳이어서 집에 재물이 쌓이는 명당이라는 게 풍수지리학자들의 진단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남동에는 ‘능터골' 이란 옛 지명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능터로 미리 정해놓은 자리라서 그렇다는군요. 옛날 왕가의 묫자리로 내정될 정도니, 소위 ‘명당동네'의 파워를 짐작할 만 합니다.

올 8월, 유명연예인, 재벌가 등 슈퍼리치들만 산다는 이 동네 유엔 빌리지 내에서도 가장 비싼 빌라가 분양을 시작했습니다. ’라 테라스 한남'이 그것입니다. 지하 3∼지상 3층, 전용면적 244㎡ 총 15가구로 구성됐습니다. 분양가는 최고 105억원. 아무나 살 만한 가격은 아닙니다. 그래서 분양도 아무에게나 하진 않았습니다. 재벌2세나 3세, 중소기업 경영인 등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분양이 추진됐죠. 실제 유명 연예인 몇몇도 다녀가고 자산가들도 찾는 등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15가구 중 12가구가 비어있습니다. 토지소유주였던 원주민 3가구만 입주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문제는 분양성인것 같습니다. 일종의 사업성이죠. 익명을 요구한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빌라 부지는 애초부터 분양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곳이었다. 애초에 땅을 샀던 시행사도 손을 털고 나간 곳이다. 분양은 올해 이전에도 했었다. 그땐 60~70억원대였다. 그 가격도 유엔빌리지에선 제일 비싼 편이다.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분양을 하는데 누가 사겠나”


과연 그랬습니다. 인터넷엔 중개업자들이 2011년에도 마케팅 차원에서 올린 자료들이 눈에 띕니다. ‘매매가 60~70억대’ 라고 언급돼 있습니다.

애초 ㈜동양 건설부문이 시공한 라테라스 한남은 짓는 데 대략 5년이 걸렸습니다. 부지 값은 500억원 수준. 금융 비용과 시공비까지 포함하면 1000억원 넘는 자금이 투입됐습니다. 최고급 자재도 썼을테니 ‘억’소리 나는 가격에 지어진 집이 비싸게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현재 이 빌라는 동양증권 자산입니다.유동성 압박에 시달린 ㈜동양이 작년에 라테라스 한남을 계열사인 1000억원에 동양증권으로 넘겼습니다.

이 빌라는 과거 ‘누드분양'으로 마케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초호화 빌라나 타운하우스를 분양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건물 외관을 완성한 뒤 내부 인테리어는 입주자 취향에 따라 설계하는 형태입니다. 인테리어비용만 수억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누드분양 당시에도 최고 63억원으로 마케팅을 진행했었다고 인근 공인중개업계는 말합니다. 8월부터 분양을 했을땐 내부공사가 거의 끝난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분양방식이 일부 조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라 테라스 한남’에 관심을 둔 수요자들은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최근 ㈜동양 등 주요 계열사들이 유동성 위기로 무더기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는 등 어려운 그룹 상황이 전해지자 이들은 관망세로 돌아섰습니다. 분양가 하락을 예상해 매입 시기를 늦춘 것입니다.

하지만 당분간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라테라스 한남 분양사 측은 그러나 “워낙 고급스럽게 심혈을 기울여 지은 만큼 분양가를 낮출 계획은 없다”며 “관심을 보인 투자자들이 많아 조만간 분양도 잘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분양이 잘 될 것이란 이야기는 업체 측의 ‘희망사항’ 아닐까요. 건설업계에서도 그룹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 당분간 제값 받고 분양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아무리 부촌에 들어선다 해도 지나치게 비싼 집을 거들떠 볼 사람은 없어보입니다. 사실상 ‘빈 집’인 이 단지에 이사오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생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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