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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 주말 · 초과 · 연장근무…대한민국 근로자의 ‘週 40.2시간’
1953년 ‘1일 8시간 근무’ 첫 규정
법과 다른 현실 전태일의 비극낳아

법적으론 주5일제 시행하고 있지만
OECD國중 두번째로 긴 근무시간

일자리는 나누고, 생산성은 향상…
근무시간 축소 전 세계적 추세로




‘김토일(金土日)’.

80년대 저항시인 김남주의 아들 이름이다. 주 6일 노동, 초과근무로 혹사당하던 그 시절 시인은 ‘노동자는 일주일에 사흘을 쉬어야 한다’는 소망을 담아 아들 이름을 지었다. 80년대 노동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주말(휴일)이 있는 삶’을 꿈꾸며 남긴 뜻깊은 이름이다.

2013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됐지만, 그의 소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근무시간이 긴 나라다. 법적으론 주 5일제를 이어가고 있지만 현실은 주말근무, 초과근무로 주 6일제는 기본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40.2시간으로, OECD 평균인 32.8시간 대비 8시간이 넘친다. 


▶하루 ‘8시간 노동제’ 쟁취, 200년 투쟁기=과거 노동이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아닌 운명에 달려 있었다. 대부분은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았고 노동은 집에서 이뤄졌다. 전환점은 18세기 중반 시작된 산업혁명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스’는 숙련된 기계와 다를 바 없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장시간 노동에 지친 근로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 당시 칼 마르크스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이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투쟁은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다. 산업혁명 당시엔 주 7일, 하루 12~16시간 노동은 비일비재했다. 유럽의 가난한 여성들은 높이가 80cm가 안 되는 갱도를 기어다니며 하루 12시간 이상 석탄을 날랐다는 문헌기록도 남아 있다.

이후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저항하는 근로자들의 집단행동이 불거졌고, 비로소 근로자의 권리와 노동시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에선 산업혁명으로 발생한 가혹한 노동 환경을 시정하기 위해 1802년 ‘공장법(factory law)’이 제정됐다. ‘9~13세 어린이의 9시간 노동, 14~18세의 12시간 노동 금지’ 등을 규정했고, 이후 유럽 각국에 공장법 제정이 확산됐다. 1847년엔 어린이와 여성들의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하는 등 진보를 거듭했다.

이후 8시간 노동제를 최초로 도입한 곳은 호주다. 1858년 호주 건설업에 한해 8시간제가 도입됐고, 1920년대에 8시간 노동제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8시간 노동제를 세계 표준으로 만든건 러시아였다. 러시아가 1917년 8시간 노동제를 실시했고,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제1호 조약으로 1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제를 확립했다.

▶100년 늦은 한국, 21세기에 8시간 근무제 확립=우리나라 노동시간 단축 역사는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에도 공장법 도입이 논의된 적 있지만, 자본가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 이승만 정권에서 노동자 투쟁이 벌어지면서 최초로 노동법이 제정됐다. 1953년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제정해 ‘1일 8시간, 주 6일제, 주 48시간’을 법정기준 근로시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법과 현실은 달랐다. 1960년대 전태일 열사가 불길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비극도 발생했다. 법정기준 근로시간 따위는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그는 “하루 근무시간 10~12시간으로 단축, 한 달에 4번 휴일을 달라”고 주장했다. 하루 15~16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을 구제하는 게 죽기 전 그의 바람이었다.

이후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진 건 2000년대 들어서다. 김대중 대통령은 주 5일제 근무제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고, 정부는 2002년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2004년 7월 ‘일 8시간, 주 40시간제’가 최초 시행됐고, 지난해엔 종업원 2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확대 적용됐다. 서구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뤄진 8시간 근무제가 한국에선 100년 후에야 실현된 것이다.

▶4일 근무, 유연근무제 각광=최근 전 세계적인 추세는 근무시간을 축소하며 근로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프랑스는 2000년 ‘오브리법’을 근거로, 주 35시간, 연간 160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주중 수요일에 쉬는 주 4일제, 수요일 재택근무를 하는 주 5일제를 지원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1982년 임금인상 억제, 근로시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노사 대타협,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냈다. 이후 20여년간 임금상승률을 5% 이내로 유지하면서 일자리 250만개를 창출했고, 시간제 근로제가 증가하면서 주 4일제가 가능해졌다. 미국의 유타주에서도 재정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주 4일제를 실시했고, 캘리포니아주도 에너지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주 4일제를 검토 중이다.

외국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있다. 1990년대 폭스바겐사와 2000년 루프트한자의 경우 주4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급여 20%를 삭감했다.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 각광받고 있다. 특히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직장맘(mom)’들의 경우, 선택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만큼 근무하고 대신 급여를 적게 받는 형태다. 그러나 낮은 임금에 의존한 고용 증가에만 머물 경우, 새 일자리 대부분이 시간제 일자리로 채워지는 것도 개선돼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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