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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대선불복'일까,'부정선거'일까?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 의지’를 쉽게 풀면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쯤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중고등학교 때 많이하던 ‘별명 붙이기’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제 주변엔 이가 튀어나온 친구 ‘쥐돌이’, 키가 작은 친구 ‘콩’, 얼굴이 검은 친구 ‘소말리아’ 등이 있었습니다. 무서운 선생님께는 ‘독사’, ‘백사’ 등의 별명이 돌아갔죠. 사소한 ‘별명 붙이기’를 ‘권력에의 의지’로 풀 수 있는 건 ‘질서 부여’란 공통 속성 덕입니다. 주변의 것을 제 나름대로 정의 내리려는 것이 바로 ‘권력에의 의지’라는 설명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정치권에서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 역시 서로에게 유리한 정의 내리기를 하려는 ‘권력 의지’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대선을 두고서 말이죠.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선거불복’이라 주장하고, 민주당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대해 ‘부정선거’ 또는 ‘선거부정’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아직 논란은 진행중이고 양측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고 걸려있는 ‘판돈’도 큰 터라 짧은 시간 내에 결론이 나올 것이라 예측하긴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우선 새누리당 얘기부터 해보죠. ‘대선불복’이란 단어에는 ‘결과’에 방점을 찍어두고자 하는 새누리당의 해석이 담겨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당초 30만표~50만표의 박빙차 승부가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예측을 비웃으며 100만표차 이상의 격차를 벌린 ‘큰 승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것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겠느냐’는 박 대통령 말의 자신감엔 ‘표차가 컸다’는 배경도 깔려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불복’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 역시 새누리당 입장에선 만족스럽습니다. ‘결과에 승복’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미덕’이라 배운 바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 대해 정의 내리고 싶어하는 ‘부정선거’란 단어는 ‘과정’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그리고 군(軍)까지 가세해 박근혜 후보를 옹호하고, 문재인 후보를 비난하는 여론전을 폈기 때문에 선거의 정당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주장입니다. 결과 승복을 위해선 과정이 정당했어야 하는데, 과정이 부당했으니 선거 결과 역시 긍정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민주당 관계자들과 사석에서 만나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이었던 사람’이란 농담도 오갑니다. 민주당이 곤혹스러운 것은 결과를 뒤집을 수단이 없다는 점입니다. 대선 관련 공소시효는 이미 지나버렸고, ‘탄핵’ 의석수(국회의원 2/3)도 한참이나 모자라지요. 지도부가 ‘대선과 국정원 수사 연계는 없다’고 선을 긋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수혜자”라면서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현재 상황에선 어떤 ‘정의 내림’이 맞을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한가지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관련 사안의 분수령이 될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 결과 발표입니다. 현재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두고 수사를 진행중입니다. 지난 21일 불거진 ‘윤석열 파동’의 핵심은 수사 외압 여부로 초점이 모이죠. 의욕을 보이던 일선 검사팀이 수뇌부로부터 ‘수사 방해’를 받았다는 윤석열 전 팀장의 주장과 ‘정당한 수사지휘였다’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내부 마찰입니다. 대검은 관련 사안에 대해 감찰을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말 알고 싶어하는 것은 대검의 감찰 결과가 아닌, ‘실체적 진실’일 것입니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는지 아닌지, 새누리당 측의 주장대로 ‘개인’의 일일 뿐인지도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다시 ‘권력 의지’로 돌아가보죠. 최근의 정치 상황을 ‘대선불복’이라 바라보는 것은 새누리당의, ‘부정선거’라 바라보는 것은 민주당의 시각입니다. 이는 양측의 ‘권력 의지’가 맞부닥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양측은 서로에게 유리한 ‘질서 부여’를 위해 언론을 향해 발언을 하고, 국민들은 ‘권력에의 의지’가 담긴 두 단어를 이용해 이번 사안을 관전하고 있습니다. 어느 측이 주장하는 ‘질서’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할지는 미래의 일이니 차치하죠. 다만 수사와 수사결과 발표, 공소 유지, 재판과 최종적인 대법원 선고까지에 이르는 경로에 이런 양측의 권력 의지가 개입, 결과를 바꾸려하는 시도가 있는지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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