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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현실과 꿈이 모두 막다름인데...윤고은, 최제훈의 소설에서 길찾기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짓눌리고 숨막히는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길은 하나다. 꿈으로의 도피다. 그런데 그 꿈마저 가위눌리는 악몽이라면? 윤고은의 소설, ‘밤의 여행자들’(민음사)과 최제훈의 ‘나비잠’(문학과지성사)은 그런 막다름을 얘기한다.

윤고은에게 현실 탈출은 꿈의 현실적 변형이랄 여행으로 대체된다. 재난여행상품만을 판매하는 대형 여행사 ‘정글’의 10년차 수석프로그래머인 주인공 고요나 과장은 직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상품개발 대신 전화상담과 자료나 복사하는 허드렛일이 떨어지고 ‘퇴물’만 건드린다는 상사의 성추행을 겪고선 사표를 던진다. 상사는 휴가로 처리해주겠다며 구조조정 대상인 재난상품 중 하나를 평가해오라며 출장을 제안한다. 요나가 선택한 곳은 사막의 싱크홀. 사막이 꺼지는 현상을 경험해야 마땅하지만 이미 사구가 된 사막과 활동을 멈춘 화산에서 느낄 짜릿함은 없다. 열차에서 뜻하지 않게 일행과 떨어진 요나는 여행지에서 고립되며 방갈로 매니저로부터 퇴출 위기에서 구할 새로운 여행상품 개발 제안을 받는다. 관광객들이 실제 재난의 현장을 목격하고 공포와 스릴, 안도를 느낄 싱크홀을 만드는 것. 말하자면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을 만드는 것이다. 죽는 역, 사태에 대해 증언하는 역 등 저마다 대본대로 열심이지만 전체 시나리오를 아는 이는 없다. 이 프로젝트에 섬을 장악하고 있는 폴이란 기업의 원주민 몰살 음모가 있음을 알게 된 요나는 섬을 떠날 결심을 하지만, 불법체류자로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런 요나에게 폴로부터 쪽지 한 장이 날아든다. 극중 악어 75역, 개죽음을 당하는 역이다. 대학살이 일어난 날, 실제 쓰나미가 덮치며 세상은 쓰나미냐 싱크홀이냐로 분분하다. 현실의 재난과 허구의 재난이 다르지 않은 상황, 어느 쪽도 위안을 주거나 구원해주지 못하는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최제훈의 ‘나비잠’ 역시 꿈과 현실이 갈망하는 안정과 행복이 무너진 자리를 주시한다. 꿈의 서사와 현실의 이야기가 나란히 가는 소설은 의식의 한 형태인 꿈을 삶의 한 형태로 구성해나간다. 법무법인 ‘사해’의 변호사 최요섭은 학연, 지연, 혈연이랄 게 하나도 없다. 그의 생존방법은 오직 뒤가 구린 사건을 도맡는 일. ‘피 묻은 칼’을 맡겨도 좋은 사람이란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하면서 그는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할 날만 기다린다. 완공을 앞둔 신사옥 클라우드타워만큼이나 그의 앞날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몰락은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봉사활동’ 삼아 대리기사의 누명을 벗겨준 게 발단이 됐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가볍게 행한 일이었으나 회사는 이 일로 그를 따돌린다. 결국 그의 승진의 사다리가 될 ‘유학생 데이트 강간 사건’이 후배에게 넘어가자 그는 앙심을 품고 소송 상대를 도와 인터넷에 호소문을 올리게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그에게 우편물이 배달되는데 거기엔 아내의 불륜 사진이 들어 있다. 몰락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아들의 꿈을 위해 뒷돈을 쓴 게 들통나 괴한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전 재산을 쏟아부은 주식은 폭락한다. 뇌물공여 혐의로 변호사 자격마저 박탈당한다.

꿈의 서사 역시 늘 낭떠러지다. 경찰에 쫓기다 숨어든 부유한 집에서 아이를 인질 삼아 대치하다 경찰의 총에 맞지만 목에 걸고 있는 메달 덕에 그는 살아남는다. 경찰이 시체라도 찾겠다고 수색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는 메달의 주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메달에 적힌 ‘은상, 제1회 교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 1981년 11월 무성국민학교장’이란 글귀가 유일한 단서다. 그러나 가는 길은 험난하다. 기차표가 2억1500만원, 대포차를 구하지만 경찰의 포위망에 갇힌다. 암담한 서사와 달리 최제훈의 글쓰기는 발랄하다. 만신창이지만 무성에 가면 다 해결될 것 같다. 윤고은 역시 요나는 죽지만 희망을 남겨놓았다. 살아남은 악어 역의 사람들이 간 곳, 맹그로브 숲이 그곳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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